역사적 측면에서 바라본 반미 감정

등록일 2002.12.18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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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국주의 시기 미국은 군사력을 동원해서 아시아 국가들과 수교를 요구하게되죠. 하지만 이러한 수교 조약들이 상당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고종 때 신미양요에서 반미 감정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하긴 서양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부터 반미는 아니더라도 친근감을 갖기는 어려웠을거예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부인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성향이 많으니까요. 당시 대아시아팽창주의정책을 추진한 미국은 1866년 8월 제너럴셔먼호사건을 계기로 두 차례 탐문항행을 실시하면서 셔먼호사건에 대한 응징과 조선과의 통상관계 수립을 목적으로 1871년 조선을 침략하였다. 주청전권공사 F.F.로우가 전권을 위임받고, 조선원정을 명령받은 아시아함대 사령관 J.로저스는 군함 5척, 함재대포 85문, 해군과 육전대원 총 1,230명을 이끌고 5월 16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항구를 출발하였다. 19일 남양만에 도착한 미군은 뱃길을 탐사하면서 북상, 물치도를 본 함대의 정박지로 정하였다. 미군은 조선에 탐측 승낙을 일방적으로 통고한 뒤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 해협 수로의 측량과 정찰을 목적으로 두 척의 군함을 파견하였다. 당시 밖으로 강력한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은 미군의 불법 영해침범을 경고하고 즉시 철수를 요구하였다. 미군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광성진으로 접근해오자 조선군은 경고용 포격을 가하였고 이에 미군은 일단 물러났다. 그러나 미군은 조선군의 경고용 사격을 빌미로 삼아 오히려 조선정부에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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