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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4.27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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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가치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형성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원방침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미주재정지원
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정책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단체
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민대표회의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일제는 표면적으로는 임시정부를 여러 독립운동 계열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면서도 배일행동의 근원지로 지목하고 ‘배일의 결정’이라고 표현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강경한 진압과 회유?이간책의 강?온 두 가지 방법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대책을 강구하였다. 그렇지만 ‘회유 이간 어느 것이나 가능해도 완미함이 도를 더한 무리에 대해서는 오히려 신랄한 수단을 취하여 그들을 진해시키는 것이 좋다’고 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란 이를 궁극적으로 파괴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假政府의 중요 인물들은 북경과 상해 사이에 산재하여 각 방면의 불량분자들을 조종하고 있는데 그 기세가 여기저기로 뻗어나가 대세가 크게 일고 있다. 그들을 해산시키는 것이 상책이지만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연락과 氣脈을 단절하여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중 략>
임시의정원내의 반발로 개조파와 임시정부와의 타협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자 대표자들의 이탈이 시작되었다. 5월 15일의 국민대표회의에서 의장 김동삼, 비서장 배천택, 이진산과 김형식은 소속 단체로부터 소환통고를 받고 사임을 자청하였다. 이에 따라 간도대한국민회 대표 윤해가 대표회의 의장에 선출되었고, 천도교 대표 신숙과 수청남부소대표 오창환이 부의장에 당선되어 대표회의 수뇌부가 창조파에 의하여 점유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개조파는 모두 퇴장하여 무기정회가 선언되었다. 결국 5월 15일 회의를 끝으로 국민대표회의는 결렬되었다. 그리고 개조파 42명의 명의로 5월 16일에 “통일의 유일 방침인 개조안이 부결되고 국호, 연호를 새로 정하면 하나의 민족에게 두 개 국가를 형성하여 가공의 화근을 심는 것이니 이런 현상으로는 회의를 더 진행할 수 없다”는 통고문을 발표하고 회의 참석을 거부하였다. 5월 18일의 창조파만의 회의는 유회되고 말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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