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대한제국기 광무정권

등록일 2002.12.16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가운데 말
(1) 광무정권의 성립배경
(2) 광무정권의 정치체제와 세력기반
(3) 광무정권의 통치구조
① 궁내부의 기구 확대
② 정치 주도 세력
(4) 광무정권의 역사적 평가

3. 나가는 말

* 참고 문헌

본문내용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싼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자 열강의 동아시아 정책에 변화가 일어나는 한편, 세력이 약화된 중국을 분할하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완충국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청을 지지하던 영국이 일본에 접근하고 영국의 친일정책에 반감을 가진 청은 러시아와 가까워졌다. 조선 내에서도 일본의 보호국화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세력이 배일친러 경향을 지닌 명성황후의 후원으로 성장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차지하려 하였는데 삼국간섭으로 한반도 내에서 세력이 약화된 일본은 세력을 만회하기 위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김홍집을 총리대신으로 하는 친일 내각을 세웠다. 이 같은 외세의 개입과 갑오, 을미개혁으로 왕권이 침해되고 을미사변을 겪은 뒤로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하여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취를 옮기게 된다. 아관파천으로 조선은 일단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으며, 조선 안에서 일본과 러시아의 견제로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게 되어 특정한 외세의 독점적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세력의 후원으로 차관을 도입하여 개혁을 단행하려던 계획이 어긋나 고종은 러시아에 실망한데다 환궁을 요구하는 최익현을 비롯한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치고 있었기에 1897년 2월, 1년만에 경운궁(慶運宮)으로 돌아왔다. 환궁 이후 더욱 고조된 국민의 자주의식은 청의 후퇴와 열강의 세력 균형이라는 객관적 조건과 더불어 대한제국이 성립하는 배경이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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