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인물] 만해 한용운

등록일 2002.12.15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한요운의 생애
2.시인 한용운
3.종교인 한용운
4.독립운동가 한용운
5.한용운의 일화
6.한용운의 사상

본문내용

한용운은 고종 16년 기묘(己卯)7월 12일, 이양공 한명진(夷襄公 韓明晋)의 19세손인 청주인 한응준(淸州人 韓應俊)과 온양인 방씨(溫陽人 方氏)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城谷理 縛鐵洞)에서 출생하였다. 민적(民籍)에 기록된 이름은 정옥(貞玉)이며 불문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유천(裕天)이라고 하였다. 그가 아버지를 따라 홍성읍 남문동(洪成邑 南門洞)으로 이사한 것은 7세때의 일인데 어려서부터 천재(天才)니 신동(神童)이니 하는 평이 있었다. 9세 때에 『기삼백주(朞三百註)』와 『서상기(西廂記)』를 읽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무슨 책이고 한번 보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 이 지방에서는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4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의 명을 받고 홍성읍 학계리(鶴溪理)에 사는 전영주(全永周)의 셋째 딸 정숙(貞淑)과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2년이 되는 16세에 돌연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雪嶽山 五歲庵)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고용(雇傭)생활을 하였다. 탑동공원(塔洞公園)에 세워진 비문(碑文)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한용준이 동학란에 가담한 관계로 한 때 피신길에 어른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그의 가정환경이 동학군에 가담할 형편이 아니었다 향리에서는 그가 동학을 하였다는 말도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을뿐 아니라 홍주 구군지(洪州 舊郡誌)에 의하면 동학운동 당시 한응준(韓應俊)이 중군(中軍)이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俊'자와 '駿'자가 차이가 있어 판단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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