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인조가 남한산성을 선택한 이유는?

등록일 2002.12.15 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답사를 포함해서 조별발표한 자료입니다.
단순한 자료 조사뿐이 아니라 우리들의 가설까지 집어넣은 근 2주이상 고생해서 만든자료입니다.
한국문화사 과목에서 단연 A+맞은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역사
(1) 남한산성의 역사
1)삼국시대
2)고려시대
3)조선 시대
4)일제 시대 및 해방 이후
(2) 강화도의 역사
1)삼국시대
2)고려시대
3)조선시대
2. 성곽
(1)성곽의 정의
(2)성곽의 구성요소
(3) 남한산성 vs 강화도의 성곽 비교
3. 우리의 가설 (인조의 남한산성 선택에 대한)
(1)병자호란
(2)시대적 배경 및 정치적 배경에서 본 이유
(3)성곽의 특성 때문?

Ⅲ. 결론
★오늘날의 남한 산성은...

본문내용

치욕의 역사일수록 후세에 전달되어 되돌아보게 되는 것일까. 드라마에서 일제 시대를 주요한 소재로 다루는 것도 그 만큼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정복자로서의 역사가 없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에게 침략 당한 역사는 더 큰 상처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민중들을 신체적·육체적으로 고통받게 했던 외세는 대표적으로 세 국가로 기억된다. 비단 근대사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전반에 걸쳐 한반도로 손을 뻗쳤던 중국, 조선시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는 일본, 현재 간접 지배를 하고자 하는 미국이 있다. 그 범위를 조선시대로 좁힌다면 왜란과 호란이 조선 백성들에게 시련을 가장 많이 준 외침으로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으로 우리 국토는 황폐해졌고,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에 시달렸다. 특히 호란은 조선의 왕이 무릎을 꿇었던 치욕의 역사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병자호란은 그렇게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 산성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우리네 부녀가 '환향녀'(오늘날 음습한 부녀를 일컫는 말에 어원이 됨)가 되어 돌아와서 이혼을 당하고 세가가 볼모로 청에 붙들려 가게 되었던 병자호란을 좀 더 용감하게 물리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명분만 앞세워서 배금친명책을 주장하였던 선조들은 현실주의적인 외교를 할 수 없었던 것인가.

참고 자료

홍성암, 대하역사소설「남한산성-인조반정1,2」, 서울:太學社, 1992
이경수, 「역사의 섬, 강화도」, 서울 : 신서원, 2002
박현숙, 「백제 이야기」, 서울: 대한 교과서, 1999
서울특별시사 편찬위원회,「서울의 산」, 1992년
김재일, 「생태기행 수도권편」, 서울 : 당대, 2001

http://myhome.naver.com/namguana(성곽에 대한 조사)
http://www.namhansansung.or.kr(남한 산성에 대한 조사)
http://binin.netian.com/horan.htm(병자호란)
http://www.ganghwaro.com(강화도)
http://www.ocp.go.kr(문화재청)
http://www.naver.com(두산 엔사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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