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일본의 개항] 조선과일본의개항에서의 대원군과 메이지유신의 영향

등록일 2002.12.15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900원

본문내용

조선과 일본의 개화과정은 개항부터 그 전개까지 거의 흡사하다. 외국함대에 의한 무력시위와 이후에 이어지는 불평등조약, 외세배척세력과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이 거의 일치한다. 약 20여년의 차이를 가지는 두 나라의 개항은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여년의 차이는 후에 조선을 식민화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었고, 아시아의 열강으로 서구사회에 당당히 인정받게 되는 근원이 되는 기간이다.
조선의 경우에는 북학파를 계승한 대외통상론자들의 활동과 조선후기 성장한 상업 세력들, 서학의 유포에 따른 학문적인 욕구 등이 존재했다. 그러나 조선사회에서 이런 세력들이 기존의 이데올로기나 문화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즉, 기존의 유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서구인들을 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서구문물을 접할 때도 학문적인 연구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그것을 실생활에 도입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적었다.

반대로 일본은 이미 전국시대부터 포르투갈 등과 교역을 제한적이나마 이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쇄국하에서 유럽의 말이나 지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쇼군, 로퓨, 나가사키의 통역뿐이었으나, 8대 쇼군 요시무네때 크리스트교와 관계없는 한역양서의 수입을 허락하여, 18세기 양서연구가 활발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어본 해부서가 번역되었으며, 네덜란드어사전도 만들어졌다. 네덜란드어를 통한 서양학문연구를 난학이라 하는데, 이로서 의학, 생물학, 지리학, 병학 등 근대적인 학문을 발달시키게 되었다. 1823년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상관 의사였던 독일인 시볼트는 사숙을 열어 많은 난학자를 양성하였다.

19세기 전반 막부는 쇄국정책을 비난하는 학자들을 탄압하는 한편, 네델란드서적의 번역을 담당하는 관청을 두고, 페리제독의 내항이후에는 외교문서 번역을 위해 양학연구기관 겸 외교문서 번역소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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