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사] 김구에 대해서

등록일 2002.12.15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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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구(金九) 선생님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셨고, 본관은 안동, 아명은 창암(昌巖), 본명은 창수 (昌洙) 개명하여 구(九 龜), 법명은 원종(圓宗), 환속 후에는 두래(斗來)로 고쳤다. 자는 연상(蓮 上), 초호는 연하(蓮下), 호는 백범(白凡), 황해도 해주 백운방(白雲坊) 텃골(基洞) 출신으로, 순영(淳永) 의 7대 독자이며, 어머니는 곽낙원(郭樂園)이다. 김구 선생님은 을미사변으로 충격을 받고 귀향을 결심하고, 명성 황후의 원수를 갚는다 하고, 1896년 2월 안악 치하포에서 왜병중위 쓰치다를 맨손으로 처단하여 국모의 원한을 푸는 첫 거사를 결행하였다. 그 후에도, 황해도 장연에서 봉양학교설립을 비롯하여, 교단 일선에서도 계몽 교화사업을 전개하였으며, 20대 후반 1903년(광무7) 기독교에 입교하여 전 남포 예수 교회 에버트 청년회 총무로 일하던 중,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경하여 상동교회 지사들의 조약반대 전국대회에 참석하였으며, 이동녕, 이준, 전덕기 등과 을사조약의 철회를 주장하는 상소를 결의하고, 대한문 앞에서 읍소하는 한편, 종로에서 가두연설에 나서기도 하여 구국대열에 앞장섰다. 1906년 해서교육회 총감으로 학교 설립을 추진하여 다음해 안악에 양산학교를 세웠다. 1909년 양산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전국 강습소 순회에 나서서 애국심 고취에 열성을 다하는 한편, 재령 보강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때 비밀결사단체 신민회의 회원으로 구국운동에도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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