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인물사 - 폴리갑(수업정리 내용)
- 최초 등록일
- 2013.04.10
- 최종 저작일
- 2007.05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 박해 아래 성장하는 교회
2. 폴리갑의 순교
본문내용
교회인물사
폴리갑
1. 박해 아래 성장하는 교회
[참조: 김영재, 「기독교 교회사」, 62~66]
로마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 변화:
<처음> 유대교의 한 종파로 여겨 관용 → <점차> 기독교를 종교적?정치적?사회적으로 위험한 세력으로 간주하게 됨.
∵ 황제 숭배 거부 & 민족을 초월해 각 사회 계층으로 침투.
64년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 → 당국이 크리스천을 단지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핍박하는 전례.
드러난 범죄 사실은 없었음 → <죄목> 황제 숭배 거부 & 신들 숭배 거부.
cf. Bruce, 207~208. 신흥종교 / ‘무신론자들’ / 반사회적 모임 / ‘식인행위’ & ‘근친상간.’
112년, 플리니우스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보고서. [Bruce, 214~215]
트라야누스의 지시: 크리스천임을 부인하고 신들에게 제사 드리는 자 → 용서.
but) 익명의 투서는 받지 말도록. ⇒ 2세기말까지 이 정책이 유지됨.
크리스천들은 황제에게 붙여지는 “주님”이란 칭호가 신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돌릴 수 있는 칭호를 다른 존재에게 부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했음. [Bruce, 219]
참고로, 유대인이 국교 형식을 강요받지 않은 이유는 유대교는 제국 내의 속국을 위한 공인된 종교였기 때문임. 이에 비해 기독교는 공인된 종교도 아니었고 어느 특정한 국가의 종교도 아니었음. [Bruce, 218~219]
박해의 대상이 주로 교회 지도자들로 국한되어 있었음: 이그나티우스(35~107, 트라야누스 치하, 로마) / 폴리갑(c. 69~155/156, 서머나 감독). [Bruce, 219~22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 재위) 통치 기간 중 골(Gaul) 지역의 리용 & 비엔나에서 심한 박해 ← ‘거룩한 입맞춤’에 대한 오해에서. cf. 아테나고라스의 변증서.
3세기초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3~211 재위) 황제 치하. 로마제국 전역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