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교육 (내용과 기관)
- 최초 등록일
- 2013.04.06
- 최종 저작일
- 2013.03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Ⅰ.서언
Ⅱ.가정교육
ⅰ.태교
ⅱ.유아교육
Ⅲ.기관
ⅰ.서당
ⅱ.서원
ⅲ.향교
ⅳ.사학
ⅴ.성균관
ⅵ.기타
Ⅳ.결언
본문내용
Ⅰ.서언
조선의 교육체제는 국가의 지도 이념인 유학을 보급하고 연구하는 체제로서, 국가에서 지대한 관심을 두었다. 태조는 즉위교서에 국가의 2대 치국정책으로 ‘농상(農桑)의 장려’와 ‘흥학(興學)’을 채택하였다. 국가의 2대 치국정책의 기본적 정책으로 흥학은 유학으로 민풍을 순화하고, 정무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가 지향하는 삼대(三代)의 이상적인 도덕 국가를 건설하는 의도였다. 그래서 교육기관에는 유학에 공헌이 큰 유현을 제향하고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는 두 가지의 기능을 갖게 하였다. 학교에는 문묘(文廟) 혹은 사묘(祠廟)를 두고, 여기에 제향하는 것을 필수적인 행사로 하였다. 특히 성균관(成均館)이나 향교(鄕校)와 같은 관학에서는 문묘에 대한 제향이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그리고 개인들이 설립한 서원(書院)에도 사묘를 두어 유현(儒賢)을 제향하였다. 학교는 법성현(法聖賢)을 교육 목적으로 추구하였다. 교육 내용으로는 유학의 경전이 중심이 되었으며, 그 외에 역사서와 문학서가 있었다.
<중 략>
성균관에서 치뤄지는 제례 중 가장 비중있고 중요한 것이 석전제(釋奠祭)였다. 석전제란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를 비롯한 4성(四聖) 10철(十哲) 72현(七十二賢)을 제사지내는 의식이다. 조선의 성균관에서는 한국의 성현들을 추가하여 봉안하고 석전제를 지냈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 첫째 丁日)에 거행하기 때문에 상정제(上丁祭)·정제(丁祭)라고도 하고,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는 의미에서 석채라고도 하였다.
제사는 봉상시(奉常寺)가 주무관청이 되어 일을 관장하였고, 예조판서·대사성·사성이 각각 삼헌관(三獻官)을 맡았다. 장악원(掌樂院)의 악생들은 제에 필요한 음악을 담당하였다. 기일에 앞서 성균관 청소 및 각종 비품들을 점검하고 호조와 예조의 관리가 나와 미리 점검하였다. 또한 입청재(入淸齋)라는 별청을 만들어 제에 참석할 사람들이 묵을 수 있도록 하였다. 본 행사 전에는 실제와 똑같이 예행 연습을 하며 승지가 최종 점검을 한 후에 임금에게 보고 하였다.
참고 자료
우영희, 조선시대 자녀교육에 관한 연구, 교육논총, 1988
정양완, 태교신기에 대하여, 새국어생활 제 10권 제 3호(2000년 가을)
피정만, 한국교육사의 이해, 도서출판 하우, 2010. 6. 10
한국국학진흥원, “조선의 교육”, 2008. 12.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