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 부산 선암사 답사
- 최초 등록일
- 2002.12.13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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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위치
2. 연혁
3. 입지
4. 가람배치
5. 일화
6. 요약 및 소감
본문내용
천년 고찰 백양산 선암사는 신라 문무왕 15년(675)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백양산 정상에 서서 낙동강 물이 바다로 유입되는 장관을 보며 창건했다고 하여 견강사(見江寺)라 이름했고, 朝鮮寺刹資料集에 실려있는 重修記에서도 역시 신라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리고 100여 년 뒤인 서기 768년 1차 증수를 하면서 이름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신라에 불도를 전한 아도 화상이 창건한 연산동의 마하사 보다는 창건 연대가 늦으나 범어사보다는 빠른 것을 보면 부산 사찰 역사로서는 과히 손꼽을 만하다.
선암사는 뒷산 절벽바위에서 신라의 국선(國仙) 화랑들이 수련하였다 하여 선암사로 부르게 되었다. 선암사가 위치한 당감(堂甘)은 본디 제의(祭儀)를 올리는 신성한 곳으로 당(當)은 신이 내린 신성한 나무(堂上樹)를 모시는 집이고, 감(甘)은 감로수를 뜻한다. 선암사 약수(藥水)가 유명한 것도 그로부터 연유하며 일찍이 이 곳은 우리 조상들이 한마음으로 공동체를 이루면서 기도를 드린 신성한 도량이었다.
선암사기(仙庵寺記)에 의하면 고려 말 왜구들이 불상을 약탈해다가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재앙이 잦아지면서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잃은 자가 많았다. 그래서 그 불상을 다시 배에 실어 응천 (지금의 진해시 웅천동) 으로 보내서 성흥사에 모시고 있다가 현재의 극락전에 다시 모시게 되었는데 기도를 올리면 영험이 수승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조선 성종 14년(1483)에 각초선사가 중창하였다. 선조 원년(1568)에 신언스님과 숙종(1718)에 선오스님이 중수하였고, 근세 선지식으로 유명한 혜월선사와 석암스님이 주석하면서 지금의 사격(寺格)을 이루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와 종각이 배치되어 있는 극락정토 도량이며, 석축 위 동백나무가 매우 수려하다.
참고 자료
부산전통사찰의 입지연구/박성희, 2002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