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문화재][경남지역][부석사 무량수전][고려청자][팔만대장경]고려문화재와 경남지역, 고려문화재와 부석사 무량수전, 고려문화재와 고려청자(상감청자), 고려문화재와 팔만대장경
- 최초 등록일
- 2013.03.29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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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고려문화재와 경남지역
Ⅲ. 고려문화재와 부석사 무량수전
Ⅳ. 고려문화재와 고려청자(상감청자)
Ⅴ. 고려문화재와 팔만대장경
Ⅵ.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고려는 태조 이래 불교를 국교로 숭상함으로써 정치 ·사회의 지도이념이 되었다. 불교의 경향을 보면 사찰에는 사원전(寺院田) 외에 왕실 귀족들의 희사로 토지와 노비가 증가되어 대장원(大莊園)을 소유하였고, 광종 때는 승과제도(僧科制度)를 마련하여 승과에 합격하면 교 ·선종을 막론하고 대선(大選)이란 첫 단계의 법계(法階)를 주었으며, 또 왕사(王師) ·국사(國師) 제도로 승려들을 우대하였다. 문종 때 승려 개인에게도 별사전(別賜田)을 지급하였으며, 사원에는 면세 ·면역의 특전까지 부여하는 등 보호책이 강구되었기 때문에 많은 승려들이 배출되었다.
불교의 성격은 호국적 ·현세구복적(現世求福的) ·귀족적 불교로 보호육성 되었다. 따라서 역대 군왕들은 국가의 대업이나 안태(安泰)를 위하여 대사찰의 건립, 연등회 행사, 대장경 조판 등 국가적 불교사업을 추진하였다.
<중 략>
대패질을 해서 면을 고르게 한 뒤에는 경문을 붓으로 쓰고 , 그에 따라 새겼던 것이다. 경판의 양 끝에는 각목으로 붙여 뒤틀리는 일이 없도록 하였고 전체 판 위에다 가볍게 옻칠을 하고 네 귀퉁이에는 동으로 장식을 달았다.
수많은 글자를 완벽하리만큼 고르게 새겨 마치 한 사람의 솜씨처럼 보일 만큼 글자의 조형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다. 또한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고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寶庫로 북쪽의 법보전, 남쪽의 수다라전, 그리고 이 두 건물을 잇는 작은 두 동의 건물을 합쳐 모두 네 동으로 되어있다.
이 건물은 특히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에 필수조건인 습도와 통풍이 자연적으로 잘 조절되었다는 점이다. 자동적으로 습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땅에 숯과 횟가루, 찰흙 등을 넣어 다졌는가 하면 판전의 창문도 통풍이 잘 되도록 아주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져 판본 보존창고로는 아주 이상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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