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바라본 대선 분석

등록일 2002.12.12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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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92년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정부는 초기에 90%가 넘는 지지도를 바탕으로 출발을 하였다. 김영삼정권이 군사정권이 아닌 '문민정부'라는 환상속에 운동진영들도 시위를 자제하는 등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초기에 의욕적으로 개혁적인 모습을 표방하는 것과는 달리 이후의 94년의 우루과이 라운드 쌀 개방과 일관된 노동자 탄압등을 통해 자신의 보수적인 본질을 드러낸다. 급기야 일방적 정리해고제를 포함한 노동법을 96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벽에 날치기 통과를 하고, 이에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남한 최초의 정치적 총파업을 성사됨으로서 김영삼 정부는 혼수 상태에 빠지게 된다. 97년의 치러진 대선은 김영삼 정권이 극심한 레임덕에 빠진 상태에서 보수 정치권인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와 함께 민중진영에서 '국민승리21'의 후보 권영길씨등이 참가한 상황에서 치러졌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선두를 달렸으나, 이인제의 경선불복과 연이어 터진 이회창의 아들 이정연의 병역비리의 폭로를 통해 지지율이 하락하게 된다. 김대중은 김종필과 후보단일화를 통한 DJP연합이라는 전 근대적인 지역연합을 탄생시키고, 이후 대선은 이회창과 김대중의 양강구도로 재편된다. 특히 IMF가 터지고 난 다음 치러지는 대선에서 보수 후보들은 IMF의 협상결과를 무조건 받아들이겠다는 서명을 하고, 대선을 치르기 전 미국에 가서 미국 정치인을 만나서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대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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