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철원][강원도][관동문화][월정리역][도피안사]강원도 철원과 관동문화, 강원도 철원과 월정리역, 강원도 철원과 도피안사, 강원도 철원과 자모산성(성산성)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3.03.26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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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강원도 철원과 관동문화
1. 광주산맥 이북의 한탄강, 금강천 유역분지지역인 이천, 안협, 평강, 철원, 김화, 금성, 회양 일대는 차령산맥 이북의 한탄강 유역 분지
2. 광주산맥과 차령산맥간의 북한강 유역분지지역인 신연강, 소양강, 홍천강 유역지대
3. 차령산맥을 포함한 남한강 유역 분지지역
4. 동해안 지역인 강릉, 양양, 삼척 등 여러 군현으로 구성된 일대
Ⅲ. 강원도 철원과 월정리역
1. 설명
2. 관련전설
Ⅳ. 강원도 철원과 도피안사
Ⅴ. 강원도 철원과 자모산성(성산성)
1. 위치
2. 성축년대
3. 성축구분
4. 규모
5. 관련인물
6. 설명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신석기 시대의 유물들과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가 이 지역에서 다수 발견된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이곳에서 사람이 생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웃지역인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 전곡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굴․조사되어 수십만 년 전에 한탄강을 끼고 인류가 거주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최근에는 철원군내의 한탄강변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에도 사람이 거주하였음은 당시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고 있음을 보아 짐작할 수 있으며 청동기 시대에는 토성리의 토성과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을 통하여 이 지역에서 성읍국가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의 유물로 민무늬토기․간돌도끼․돌화살촉․별도끼․돌창 등이 철원읍․동송읍․원남면 등에서 출토되었다. 철기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초기 철기시대에는 연맹왕국을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당시 이곳에는 진국이 형성되어 그 속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서 철원 또는 모을동비라 칭하다가, 통일신라로 흡수되었고, 이후 901년(효공왕 5년)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905년에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 풍천원에서 13년간 통치를 하였다. 그리고 918년에는 왕건이 이곳에서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고종 4년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한 무리가 철원을 공략하고 남하한 일이 있으며, 몽고군의 침략 때에는 그 통로로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특히 제5차 침입 때에는 방호별감 백돈명의 실책으로 성이 함락되기도 하였으나 주민들은 끝까지 항전하였다. 충렬왕 16년 합단적의 침입 때에도 적들이 회양에서 김화․철원을 거쳐 경기도 양주로 남하한 일이 있으며, 왜구의 침입이 심각하던 우왕 때에는 철원으로 천도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서울을 점령한 왜군의 제4진이 동두천을 거쳐 철원․평강․김화를 점령한 뒤 함경남도 안변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피해가 극심하였으나 곧 관군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수복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적이 서울을 침입하는 통로가 되었는데, 당시 철원지역 옆의 김화 자모산성에서 적과 대치하던 관찰사 홍명구가 순절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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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2004), 강원도 시공사,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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