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의 정치적 신체와 권력의 재현방식
- 최초 등록일
- 2013.03.22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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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루이 14세는 누구인가?)
Ⅱ. 루이 14세의 정치적 신체
Ⅲ. 루이 14세의 권력 재현방식
1. 예술
2. 학문
3. 연극
4. 베르사유 궁전 (궁정예법)
5. 왕의 재현물
Ⅳ. 절대왕정, 절대군주로서의 루이 14세
Ⅴ. 결론
본문내용
절대 군주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루이 14세는 서구의 역사적 인물 중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 중 하나다.
루이 14세는 부르봉 왕조의 적자로 5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하게 된다. 이에 따라 모후인 안 도트리슈가 섭정이 되고 마자랭이 재상이 되어 보필을 받는다. 30년 전쟁과 에스파냐 전쟁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은 심화되었고 파리 고등법원이 국민들의 입장을 대표하여 왕권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들고 일어났다. 프롱드 난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된 루이 14세는 1661년 친정선포 후 재상제를 폐지하고 자신이 직접 고문관회의를 주재하였으며, 대신들에게 명하여 자기의 결정사항을 집행하게 하였다.
<중 략>
왕궁 중에서 베르사유 성이야 말로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가장 빼어난 위용을 자랑한다. 수천 명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건물복합체로 그 건물 안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따지자면 웬만한 도시 하나의 인구와 맞먹는다. 이 건축물 복합체 전체는 왕의 집인 동시에 적어도 종종 궁정사회 전체의 숙소이기도 했다. 이런 대형화는 실용적인 필요라기보다는 오히려 왕의 권력지위, 즉 특권 소유자로서의 왕의 권능을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단 성의 본채 앞에 있는 마당(Hof)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왕의 명예와 지위를 표출하는 데 하나의 궁정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으
<중 략?
지금까지 루이 14세의 정치적 신체와 권력의 재현방식으로의 예술, 학문, 연극, 궁정예법, 왕의 재현물을 살펴보았다.
왕의 두 신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던 루이 14세와 리슐리외, 콜베르와 함께 왕의 신화 만들기에 적극 참여했던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루이 14세의 명성을 쌓는데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은(물론 재정적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지만)사람들의 존재가 오늘 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루이 14세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런 권력의 재현방식들은 루이 14세의 정치적 신체가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보여지는 데 있어 탁월한 방법으로 통했고,
참고 자료
이영림, 「루이14세는 없다」, 푸른역사, 2009
Ernst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3
미르조예프, 「바디스케이프」, 이윤희, 이필 역, 시각과 언어, 1999
노베르트 엘이라스, 「궁정사회」, 박여성 옮김, 한길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