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로마의 목욕문화
- 최초 등록일
- 2002.12.12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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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욕탕-목욕 문화의 발달
공중 욕장의 내부구성 및 사용
공중 욕장의 구조
남아있는 유적
▲ 그 밖의 목욕탕
▲ 목욕방법
▲ 로마 목욕탕의 의의
본문내용
종교적 축일이 주는 열정이나 즐거움과는 달리 조금도 성스럽지 않은 즐거움이 있었는데,
오직 도시만이 이것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 이것은 도시 생활의 편의 시설 중의 하나로서 후원
자의 선심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공중 목욕탕, 극장, 원형 경기장의 마차경주, 원형 경기장의
투기장(그리스 지방의 경우에는 극장)에서 벌어지는 검투사의 시합이나 야생동물과 검투사의
싸움이 그것이었다. 목욕과 구경에는 많은 돈이 들었다. 아무튼 로마에서는 그러했다. 하지만
입장료는 언제나 쌌다.(우리는 이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마 후원자의 너그러움이 입장료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더욱이 공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구경거리가 있는 전날
밤부터 줄을 서기 마련이었다. 자유민, 노예, 여자, 어린이 그리고 여기에 외국인을 포함한
온갖 사람들이 구경이나 목욕을할 수 있었다. 아주 먼 곳에서도 검투사가 싸운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을 보러 왔다. 이처럼 사생활의 대부분은 공공 시설 속에서 소비되었다.
목욕탕은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치 오늘날의 바닷가처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철학자들과 기독교도들은 이러한 즐거움을
거부했다. 외모를 깨끗이 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이 없던 이들은 한 달에 겨우 한두 번 목욕
하고 말았다. 철학자는 수염을 가꾸지 않는 것을 엄격함의 증거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부자의
저택 치고 목욕탕이 없는 집은 없었는데, 방 몇 개를 차지하는 목욕탕은 땅 속에 난로를 묻어
특별하게 마련한 것이었다. 도시마다 공중 목욕탕을 적어도 하나씩은 갖고 있었는데, 필요한
경우에는 공중 급수대에서처럼 수도교를 놓아 먼 곳에서 물을 끌어다 대주었다(가정에 물을
공급하는 사업은 여전히 사기꾼들이 부정하게 독점하는 사업이었다).
키케로의 말에 따르면 날마다 공중 목욕탕을 열 때 치는 종소리는 학생을 가르치는 철학자의
목소리보다 더 듣기 좋았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도 푼돈을 내고 공중 목욕탕의 사치스러운 구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이러한 구역은 황제나 도시의 명사들이 이들을 존중한다는 표시로 마련해준 것이
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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