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역사와 건물에 대한 모든 것
- 최초 등록일
- 2013.03.12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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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초기 창경궁의 역할
창경궁은 성종 대에 처음 지어졌다. 성종13년 1482년 12월 창덕궁 수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성종은 수강궁을 수리하라는 명을 내렸다.
(수강궁:세종이 즉위하며 상왕인 태종의 처소로 사용했던 궁이다.
그후 성종은 당시 왕실의 세웃어른이신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로 잘알려져있음) 큰 작은어머니 안순왕후 한씨(예종의 비), 그리고 할머니 정희 왕후 윤씨(세조의 비)를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는 공사를 벌려 1484년(성종15년) 9월 부분 완공을 보았다. 이때 홍문관 응교였던 김종직이 창경궁 상량문을 지어 바쳤다 라는 자료로 비추어 이미 창경궁이란 새 이름도 지어졌다.그리고 1484년부터 다시 보완하는 공사를 한 뒤 1485년 5월(성종16) 5월에 소혜왕후와 안순왕후가 이어하였다. 그 당시 창경궁은 독립적인궁궐로서 규모를 갖추고 있지만 왕이 일정기간 기거하며 정사를 처리하는 궁궐로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창경궁은 창덕궁에 수용할 수 없는 왕의 할머니나 어머니등 왕실의 가족들과 그에 딸리 인원들을 수용하는 기능을 보완하는 궁궐이었다.
<중 략>
22. 집춘문
창경궁 동북쪽 담장에 있는 궁문으로 서울 문묘가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현재 이 문 외부 지역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어 출입문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은 후원의 동문으로, 태학(太學) 서쪽 반교(泮橋)와 제일 가까워 역대 임금들이 태학으로 나갈 때에는 이 문을 경유하였다 한다. 초창은 창경궁 창건 때인 성종 때이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조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진다.
24. 월근문
창경궁 사무소 정면에 있는 이 문은 정조가 그 부친 사도세자의 묘(廟)인 경모궁에 수시로 참배하기 위하여 정조 3년(1779)에 건립하였다. 정조가 매달 초하루 경모궁에 참배하러 거둥할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을 경유하였기 때문에 월근문(月勤門)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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