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 자료는 역사 소눈문으로서 대한제국기의 여성상의 변화를 살펴본 자료입니다.
대한제국시기의 근대성을 살피는과정에서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측면에서 벗어나 보다 미시적인 관점으로 접근함으로서, 대한 제국시기의 근대성에 관한 새로운 근거를 제공합니다.
또한 여성의 근대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그 최초의 모습을 살펴 볼 수도 있습니다.
제도적, 의식적, 생활사적으로 어쩧게 여성이 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았으며, 당시의 신문자료를 통해 그 구체적인 근거를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여성 교육의 발달
1. 여성 교육의 필요성 인식
2. 여성 교육의 이념과 실상
Ⅲ. 혼인 의식의 변화
1. 혼인 제도의 변화
2.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
3.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 변화
Ⅳ. 여성의 사회 활동
1. 여성의 경제 사회 활동
2. 여성의 신문 독자 투고
Ⅴ. 결론
본문내용
대한제국은 일제 강점기 이전의 마지막 국가로서, 청일 전쟁 이후 3국 간섭과 명성황후 시해를 비롯해 여러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본격적인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국권이 상실되어 불과 14년 만에 붕괴 되었다. 더군다나 후반기의 7년 동안은 일제 통감부의 괴뢰정부로 전락된 모습마저 보였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근대국가로서 부국강병을 통한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지향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조선 왕조가 스스로 근대로의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여, ‘舊本新參’을 내걸고 전통과 현대를 절충하는 방향으로 우리식의 근대화를 추진 한 것이다. 비록 그 결과는 실패로서 종언 되었지만, 자생적으로 발생한 근대로의 개혁 의지는 높이 평가받아야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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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중심 사회에서 늘 타자로 인식되었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공적 주체로 호명되었다. 가족이 가문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국가의 기초 조직으로 튼실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 국민의 위계화 속에서 여성의 지위도 조정된다.
가문의 관습인 과부 개가 금지, 억혼, 축첩제도 등은 새로운 시대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당연히 타파되어야 할 구습의 악법으로 여겨지며, 남녀동등법이나 일부일처제는 성취되어야 할 근대적 일상으로 규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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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성은 여권운동, 민족 구국운동 등 각종 사회운동에도 참여하였다. 나아가 여성교육운동, 축첩과 조혼 반대운동 등 여성과 직접 관련된 활동과 을 펼치기도 하였다. 비록 성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뚜렷한 여성해방이념을 내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스스로 사회적 가치를 자각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려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민족 구국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서 한 차원 높은 민족과 국가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여성스스로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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