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미륵사와 황룡사
- 최초 등록일
- 2002.12.11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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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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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론
본 론
1. 미륵사와 황룡사의 유래
2. 미륵사와 황룡사의 개요
3. 미륵사와 황룡사의 설화
4. 미륵사와 황룡사의 유적
5. 미륵사와 황룡사의 건축양식
결 론
본문내용
고대 인도에서 생겨난 불교는 중국을 거쳐 삼국 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순으로 전파된 후 우리 나라의 중심사상으로 오랜 시간 인식되었고,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 많은 절들이 생겨났다.
우리 나라의 이러한 많은 절들 가운데 크고 유명했던 절들을 꼽으라면 불국사와 황룡사, 미륵사, 화엄사. 해인사 등이 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을 간직해온 절들은 역사적인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사라진 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륵사와 황룡사이다. 백제의 미륵사와 신라의 황룡사는 과거 우리나라 제일의 절들이었다. 하지만 이 절들은 이제 과거의 화려한 흔적을 지닌 터로만 남아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절들은 지니고 있는 유물과 유적을 쉽게 관찰하고 연구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이제 터만 남아있는 미륵사와 황룡사는 남아있는 터로라나 그 규모를 짐작할뿐이다. 한때 많은 유적과 유물을 지니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하였지만 이제 사라진 두 절을 조사하여 이 절들이 지닌 역사적인 가치와 유물과 유적등을 알아보고 의미를 되집어 보자.
미륵사
익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왕위에 오른 무왕(武王)이 익산을 중심으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왕위에 오른 무왕은 성왕의 관산성(管山城)의 패전을 설욕하고자 즉위초에 신라를 대대적으로 공격하였다. 그것이 무왕 3년(602)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의 전투이다. 백제가 평상시에 유지하는 병력은 약 6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백제는 이 전투에서 전체 병력의 2/3에 달하는 4만명의 병력을 상실한 이 전투는 백제 내부에 또한번 커다란 위기의식과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