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본 한국과 일본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13.02.14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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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대학교 일본의 이해 레포트 자료입니다.
제꺼이지만 자신의 느낌은 본인의 느낌을 적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작년꺼라서 약간 시사에 안맞는 내용이 섞일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목차
1.전근대
2.근대
3.현대
4.나의생각
본문내용
1.전근대
: 조선통신사와 유교적 우열관계
이 시대를 관통하는 동아시아의 기축적 질서는 중국 중심적 유교문명이었다. `천하의중심`인 명나라의 `책봉체제`아래 주변 국가들을 편입하여, 평상시에는 유교적 통치이념에 따라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유사시에는 군사적 보호를 하는 위계체제, 그리고 문화적 월성에대한 자부심을 근거로 그 이외의 집단을 `오랑캐`로 간주하는 화이관을 특징으로 하는 질서이다. 조선과 일본 모두 1404년에 `책봉체제`에 편입되었는데, 양국 사이에는 대등한 `선린관계`를 맺어 조선 전기 200년간 통신사와 국왕사를 주고받기도 했다.(손승철,2006) 그러나 이후 대륙에서 동떨어진 일본은 스스로를 또 하나의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했고, 중국 중심질서의 예외자가 되었다. 또 마침내는 중국을 정벌하려까지 하다 실패했고. 따라서 대륙과의
정상적인 교류도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중국의 발달된 유교문화와 재부가 필요했고, 따라서 간접적인 형태로라도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에도막부는 한편으로는 조선과의 무역을 통하여 중국 무역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또 한편으로는 소세계 질서의 중심으로서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에 다시 통신사절단을 요청하였다. 조선도 통신사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외교의례뿐만 아니라 문화적 의례까지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 이를 받아 들였다.(젠슨, 1999 : 41-45) 실제로 조선통신사는 에도 및 교토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왕래한 곳곳에 다양한 문화적 자극과 정보교환의 흔적을 남겼으며, 교류의 대상도 무사 및 학자계층뿐 아니라 상공업자 및 농민에 이르기까지 아주 넓었다. 즉 조선 통신사는 당시의 쇄국상황 하에서도 양국 간의 공식적 합의 하에, 상당한 기간에 걸쳐, 또 현지 대중과도 접촉을 가지면서 이루어졌던 대표적인 문화교류의 사례이다. 또 이를 둘러싼 기록을 통해 당시의 교류의 성격과 상호인식을 집작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