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 신경림 시인론
- 최초 등록일
- 2013.02.14
- 최종 저작일
-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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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태일 신경림 시인론에 대한 과제입니다.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조태일
1) 생애
2) 시세계
(1) 초기시
(2) 중기시
(3) 후기시
2. 신경림
1) 생애
2) 시세계
(1) 70~80년대
(2) 90년대 이후
Ⅲ. 결론
본문내용
1941년 9월 30일 전남 곡성군 죽곡면 동리산 태안사에서 대처승인 부친 조봉호와 모친 신정임의 칠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그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다. 시대 상황에 따라 조태일의 가족들은 광주로 피난을 가서 살게 된다. 수창초등학교로 전학가서 학교를 다니던 조태일은 6·25전쟁을 겪으며 3년동안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복학하려 하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되어 편입과 전학을 통해 겨우 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광주서중에 들어갔고, 1959년 광주고에 입학한다. 광주고 재학시절,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어난 4.19혁명은 조태일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 략>
그에게 있어 자유의 문제는 생명의 문제였던 것이다. 초기에서부터 저항의 목소리를 드높였던 시에서도 역시 생명 공동체의 장이었던 유년의 기억은 늘 기저에 깔려있는 시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그에게 유년의 고향은 단지 기억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온갖 사물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이상향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여순사건이 터지자 아름다운 생명 공동체였던 공간은 살육의 현장이 되었고, 결국 떠나올 수밖에 없는 공간이 되었다. 자신이 고향을 상실한 이방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자신이 이 땅 어딘가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느꼈을 때,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한다.
<중 략>
지금까지 조태일과 신경림에 대해 논해보았다. 1980년에 광주민주화 운동 때 함께 구속되기도 했던 두 시인은 단순히 민중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내적인 성숙과 각자의 살아온 환경에서 묻어나오는 개성적인 부분이 차이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로서 5살이나 어림에도 먼저 세상을 뜬 조태일과 아직까지 활동을 하는 신경림은 서로에게 회고록을 적어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보아왔던 두 작가의 모습 안에 물질만능이 팽배하고 소통의 부재가 일반화된 현대에 낭만과 민속적 향토를 느끼게 해주는 장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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