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경주의민요와전설
- 최초 등록일
- 2002.12.08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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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본문내용
경주는 신라 천년의 도읍지로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에 나라를세운 이래로 56대 경순왕이 1,000여년이나 이어오던 신라를 고려 왕건에게 넘겨줄 때까지 실로 장구한 세월동안 지속되어온 역사도시이다. 지금의 경주는 고려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신라 당시에는 '새벌', '서나벌','서라벌'이라 불렀으니 지금의 수도라는 뜻의 서울은 여기서 생긴 말이다. 신라는 시조 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에 경주평야를 무대로 한 6개촌락에서 비롯되어 1,000년동안 영화를 누린 나라이다.신라 건국당시에는 진한 12개국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은 조그마한 나라였지만,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닦았다.5 6세기 들어서는 낙동강 유역과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 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합치고, 마침내는 삼국통일과정에서 외교적 힘을 빌었던 중국 당나라의 야심을 이 땅에서 몰아냄으로써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처럼 신라는 국토통일의 대역사를 달성하였을 뿐만아니라, 고구려 백제문화와 가야문화를 비롯하여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 서역의 문화를 받아들여 신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세계속의 신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결국 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민족의 문화적 영양과 가치를 배가시키는 동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계림의 전설
경주김씨 시조의 발상지이며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의 건국초부터 있던 숲으로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싸리나무 등의 고목이 무성하다. 태양이 제일 처음 비추어 주는 성스러운 숲이란 뜻의 시림이라 하던 것을 경주김씨의 시조가 된 김알지 탄생의 상서가 있은 뒤로 계림이라 부르고 마침내는 나라이름까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