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세대의 삶
- 최초 등록일
- 2013.01.15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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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 부모님 세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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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 나이 때의 부모님은 보통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 태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는 한국전쟁 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혼란의 시기이다. 우리 아버지는 1956년생으로 친구들의 부모님들보다는 연배가 약간 있으신 편이다. 아버지의 생년은 주민등록상으로는 1957년생으로 그 당시에는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것은 비일비재하였다. 출생신고를 이처럼 늦게 하는 이유는 당시 대한민국은 도시와 농촌 비율 중 도시보다 농촌의 비율이 높았고, 산 속 오지에 사는 경우가 많아서 면사무소에 가서 신고할 수 있는 여건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취업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 1년 늦게 출생신고를 한 것이다. 요즘에는 출생신고를 늦게 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그 당시에는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가 빈번 하였다.
아버지가 태어난 시대는 한국전쟁 후 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베이비 붐 세대이다. 베이비붐은 대체적으로 전쟁이 끝나거나, 불경기가 끝난 후 경제적·사회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상황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며,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5년부터 1964년 까지를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는데, 약 900만 명이 해당된다.
이와 같은 인구 증가는 자연히 학생 수의 증가와 관련지을 수 있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시골이지만, 한 반에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업을 받았다. 지금의 시골 학교는 한 반도 유지되기 힘든 채 간신히 명맥만 이어오고 있지만, 당시 학교는 여러 반에 엄청난 학생 수로 인해 한 면(面)에 여러 개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아버지가 살았던 동네도 그리 큰 면(面)이 아니었지만 세 개나 되는 학교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농현상으로 인해 단 하나의 학교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치열한 경쟁을 유발했고 지금 못지않은 교육열의 열기가 높았다. 이러한 높은 교육열로 인해 시골에서 도시학교로 유학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가족 전체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농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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