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부르주아의 일상
- 최초 등록일
- 2013.01.09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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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르주아의 일상에 대해 조사한 내용임
목차
Ⅰ. 빅토리아 시대의 부르주아
Ⅱ. 부르주아의 사생활
1.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의 구분
2. 가정 - 부르주아 사생활의 무대
3. 사적 공간 - 부르주아의 집
본문내용
중세시대, 봉건제도에는 4가지 계급, 왕, 귀족, 평민, 노예가 있었으며, 평민 계급 중에 의사, 법률가 등으로 학식과 부를 쌓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귀족 못지않은 돈과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식을 가진, 엘리트들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는 귀족들이 `잘난` 그들을 무시하자, 그 엘리트 들은 평범한 평민들을 선동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며 귀족 계급이 없어진 뒤, 새로운 계급을 형성했는데 그것을 사람들은 `부르주아` 라고 불렀습니다. 부르주아는 `성 안사람` 이란 뜻이다.
부르주아의 혁명 담당 계급을 뜻하는 말로 반대말로 프롤레타리아가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유산계급인 부르주아지(Bourgeoisie)에 대비되는 무산계급으로 고대로마에서 최하층 계급을 뜻하는 proletariatus에서 유래하였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활을 영위해 가는 무산자(proletaria)로 이루어진 계급을 지칭하기 위하여 독일의 사회학자인 K.마르크스가 1840년대에 사용한 개념입니다.
Ⅰ. 빅토리아 시대의 부르주아
서양에서 19세기는‘부르주아의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부르주아 계층은 자신들의 가치관, 생활규범 등을 당시의 사회·문화 전반에 확산시킴으로 부르주아 세계를 형성하였다. 즉, 19세기 서양의 근대 자본주의적 체제를 부르주아 문화가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부르주아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다양했으며, 무엇보다도 깊이 분열되어 있었다. 이들은 한 세기의 사회·문화적인 영역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단일한 계급으로 묶기 힘든 존재였다. 따라서 부르주아적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하나의 배타적인 신분이나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당시 부르주아는 직업적으로 천차만별이었고, 경제적으로는 피라미드 꼴이었으며, 게다가 높은 사회적 이동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