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 서평
- 최초 등록일
- 2012.12.20
- 최종 저작일
- 2012.04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0원
소개글
여는글, 본문, 닫는글로 나누어서 논리적으로 서술하였음.
목차
1. 여는 글
2. 내가 본 장개석과 국민당
(1) 정치적 측면
(2) 군사적 측면
(3) 사회적 측면
3. 닫는 글
본문내용
1. 여는 글
남경시대는 장개석이 영도하는 국민당이 남경시에 국민정부를 건설한 1927년 4월 18일에 시작하여 일본군의 침략이 시작된 1937년에 끝난다. 장개석은 상해에서 공산당 소탕을 감행하여 지지를 받으며 권력을 장악하였고 중국에 국민당 중심의 새 정부를 세웠다. 군벌끼리의 충돌과 열강의 거만한 모욕으로 지쳐있던 국민들에게 국민당의 지배는 평화, 번영, 민족적인 긍지의 새로운 시대의 조짐과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장개석의 국민당은 당시 열세였던 공산당에게 패하게 된다. 공산당과의 100번의 전투 중 99번의 승리를 거두었던 장개석의 국민당은 왜 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장개석이 패배한 이유는 외부에 있지 있고 국민당 내부에 있다고 보고 있다. 나 또한 이러한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저자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내가 본 장개석의 패배요인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2. 내가 본 장개석과 국민당
(1) 정치적 측면
내가 정치적 측면에서 본 장개석의 패배요인은 첫째, 사상과 이념의 부재였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쑨원의 삼민주의를 본받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당이었다. 하지만 국민당의 모습을 볼 때 이는 ‘명분’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 근거로 일단 국민당은 마치 독재정치의 모습을 띠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본래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논쟁을 하며, 선거에 의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즉, 일반 시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당의 모습을 보면 중국의 주인은 장개석이었고, 중앙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선거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한 삼민주의의 민생주의는 ㅡ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ㅡ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으며 오히려 정부는 농민들이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과세를 매겼으며, 정부 고위간부들의 부패가 심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저자는 장개석의 패배요인을 사상과 이념의 부재를 원인으로 보기보다는 부패한 국민당원과 혁신의 부족으로 보고 있지만 그러한 문제점 모두 사상과 이념의 부족 때문이다.
참고 자료
로이드 E. 이스트만 저, 민두기 역,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 지식산업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