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
- 최초 등록일
- 2002.12.06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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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프랑스 고립주의 정책
2.발칸반도를 중심으로 한 외교정책
3.대영정책(식민지정책)
*빌헬름 2세와 비스마르크의 실각
*평가
본문내용
비스마르크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주된 위험이 프랑스로부터 올 것이라고 재빨리 판단했다. 그러나 그는 알사스-로렌의 병합에 동의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촉진시킨 것은 아니다.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리쉴레와 마자랭 이후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하에서의 패배에도 분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부 영토의 상실은 이러한 자연적인 분노를 단순히 예각(銳角)화 시킨 것에 불과했다. 1870년대 초에 프랑스는 패배의 상혼을 떨어버리려는 단호한 노력을 기울였다. 독 불 국경선상에 군대가 신속하게 재조직되어 배치되고, 전쟁 배상금을 1873년까지 재빨리 갚는 것을 보고 독일인들은 크게 놀랐다. 신경이 고민해진 수상은 프랑스가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승부를 겨누려고 하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라고 확신했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다시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전쟁대신에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무기에 의존하였다. 1870년대에 한 가지 쉬운 방법이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이 독일을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옛 관계를 파기했었다. 그러나 한번 그의 목적이 달성되자 수상은 보수주의자의 본능으로서 옛 관계를 회복시키려 했다. 프랑스의재흥이 그의 본능을 확실히 해주었다. 3제협약(Dreikaiserabkommen)은 프랑스를 침묵시키고, 그것과 함께 세 나라가 모두 폴란드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동부에서의 현상을 유지시켜 줄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