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기념묘지 방문
- 최초 등록일
- 2012.12.15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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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4.19기념묘지 방문견학
목차
- 4·19 기념묘지 소개
- 4·19 운동 발생원인
- 4·19 운동 전개과정
- 4·19 운동이 가지는 의미
본문내용
·19 기념묘지는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산9-1번지에 있는 1960년 4·19혁명 때의 희생 영령 199위를 모신 묘지이다.
1963년 9월 20일 약 3,000평으로 건립되었다. 한가운데 4·19혁명의 기상을 상징하는 높이 7척의 탑주 일곱 개가 솟아 있고, 주위에는 수호신상 및 각도를 달리한 20개의 만장이 조화를 이루었다.
1993년 10월부터 성역화 조성공사가 시작되면서 묘지크기는 약 40,000평으로 확장되었으며, 유영봉안소, 4·19탑, 상징문, 상징조형물로 조성되었다. 유영 봉안소는 100평의 목조 한식 건물로 넓혀졌고, 4·19탑과 만장은 원형태로 묘역의 중심으로 옮겨놓았고, 4·19정신을 형상화한 3개의 조형물이 새로 만들어졌다. 진입로 앞에 세운 ‘민주의 뿌리’는 9개 기둥의 화강암 조형물로 민주주의 발원지임을 뜻하고, 중앙 양측에 마련된 청동재질의 ‘자유 투사’는 독재정권에 항쟁하는 모습을 담았으며, 화강암 재질의 ‘정의의 불꽃’은 높이 9m의 불꽃형상으로 4·19의 정신을 뜻한다.
<중 략>
의의
▶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반독재에 항거한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
▶ 우리나라 역사상 민중이 최초로 정권을 타도하는데 성공한 혁명
▶ 시민과 학생 스스로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며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
▶ 통일운동의 활성화 계기를 마련
▶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
▶ 4·19이후의 사회운동에 정신적 활력을 끊임없이 제공함으로써 사회모순 해결에 정신적 구심이 됨
한계
▶ 민주당 정권이 사회의 변화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처했으며, 국민의 요구에 대처하지 못함
▶ 당내 분열과 대립으로 정치적 안정을 이루지 못함
▶ 중립화 통일론, 남북협상 등통일 논의에 부정적인 자세로 일관
▶ 경제 제일주의
▶ 4·19혁명 정신을 적극적으로 계승하지 못함
▶ 4·19혁명 직후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기대에 어울리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