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체육과 민속 스포츠문화
- 최초 등록일
- 2012.12.15
- 최종 저작일
- 2012.05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저는 제가 직접 책이나 여러가지 자료를 모아 썼던 A+를 받았던 레포트만 올립니다.
목차
제Ⅰ장 고려시대의 사회와 교육‥‥‥‥‥‥1
1.고려시대의 사회
2.고려시대의 교육
제Ⅱ장 고려시대의 무예체육‥‥‥‥‥‥‥3
1.국학과 향학의 무예체육
2.무신정권과 무예의 발달
3.무예체육
제Ⅲ장 고려시대의 민속 스포츠와 오락……5
1.귀족 사회의 민속 스포츠와 오락
2.서민 사회의 민속 스포츠와 오락
제Ⅳ장 마치면서‥‥‥‥‥‥‥‥‥‥‥‥‥9
제Ⅴ장 참고문헌‥‥‥‥‥‥‥‥‥‥‥‥‥9
본문내용
1. 고려시대의 사회
통일신라는 골품제도의 악습으로 인해 대토지 소유자가 증가하면서 중앙권력이 분산되었고, 점차 민심이 이완되자 백제가 흥기하여 후백제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918년 왕건은 태봉을 세웠던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뒤 신라(935), 후백제(936)를 멸하여 다시 통일 국가를 세웠다. 고려(918∼1392)는 호족들이 연합하여 구성한 사회였고, 호족들은 중국의 1)관료제도를 받아들였으며, 국가적으로 불교와 유교를 동시에 수용했다. 불교는 수신의 도였고, 유교는 치국의 도였다. 국가적으로 불교를 장려하여 과거에 승과를 두었으며, 왕실과 귀족들도 불교를 숭상하였다. 고려는 금속활자의 발명, 상감청자와 같은 도자기 기술의 발달, 역사서의 집필 등 독창적인 문화를 창달하였다. 고려의 사회 계급은 상류층인 호족, 군인계급인 중류층, 평민이었던 하류층, 천민과 노예 계급 등으로 구분되어졌다.
<중 략>
3) 석전
석전은 고대의 것이 전승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 중 석전에 대한 내용은 매우 빈약하지만 석전이 성행하였던 것은 명확하다. 고려 충목왕 원년(1354년) 5월조에 “단오 척석희를 금지하다.” 라는 기록이 보이며, 《고려사》 우왕(1374∼1388) 조에는 “단오에 무뢰한들이 큰 길에 모여 좌우로 편을 가르고 돌이나 기와로 서로 치고, 단봉으로 승부를 결하는데, 이것을 석전이라고 한다.” 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의 석전에 관한 기록은 주로 우왕과 관련하여 집중되는데, 우왕은 신하의 만류를 뿌리치면서까지 석전을 구경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또 이색(1328∼1396)의 《목은집》 에 나타나는 단오날 석전에 관해 읊은 내용에는 “석전의 싸움기세가 강한 바람일듯하니 높은데서 구경해도 가슴이 서늘하군,” “바야흐로 조정에서 용사를 구하니 상처투성이의 얼굴이 호한일세” 등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러한 내용은 고려 석전의 성격을 3가지로 규정 지워준다.
첫째는 국속으로서의 석전이다. 석전은 단오나 명절에 행하던 민속놀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는 무로서의 석전이다. 군사훈련의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셋째는 왕이나 양반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스포츠로서의 성격을 지녔다. 석전의 이러한 성격은 조선시대로 가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참고 자료
하남길, 체육사 신론, 경상대학교 출판부, 2010, p.583∼593
이성진, 체육사, 교학연구사, 2004, p.249∼252
이학래, 한국체육사연구, 국학자료원, 2003, p.60∼75, p.124∼136, p.191∼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