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배경,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전쟁
- 최초 등록일
- 2012.12.11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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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외교사 - 독일통일배경과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전쟁
목차
Ⅰ . 서론···································1~2
독일 통일 배경
-신동방정책
-힘의우위
Ⅱ . 본론 ··································2~5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전쟁
-배경
-진행양상
-경과
-결과
Ⅲ .참고문헌··································5
본문내용
Ⅰ.서론
독일 통일 배경
독일 통일은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의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방에서 독일 통일과 함께 독일 제국을 선포한 사건이다.
독일의 통일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빌리 브란트 총리의 ‘신동방정책’이 독일 통일의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서독의 동독에 대한 ‘힘의 우위’가 통일의 배경이라는 것이 우세하다고 한다. 독일 통일에 많은 영향을 준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신(新)동방정책
1969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사민당-자유당 연정을 시작하면서 ‘신동방정책’을 내세운다. 신동방정책은 ‘접근을 통한 변화’를 기본으로 동독,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는 정책이다. 신동방정책의 핵심은 동독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었다. 서독은 1민족 2국가를 인정함으로써 동독과의 관계 정상화를 기대했다. 동독의 지도자들은 관계 정상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정권이 인정받길 바랐는데, 서독이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포기하자 서독과의 더 많은 교류를 허용하였다. 동독 역시 서독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얻어냄으로써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시키려 했다.
<중 략>
국왕과 장군, 병사, 일반 여론에까지 똘똘 뭉쳐 비스마르크를 비난했으나 비스마르크는 늘상 그렇듯 국왕을 구워삶은 뒤 다양한 방법으로 여론을 무마시켰다. 비스마르크로서는 오스트리아를 우호적인 동맹국으로 묶어둘 필요성이 있었다. 독일 통일을 방해하는 더 큰 강적을 격파하기 위하여서 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제2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서부터 이미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아직 논란이 많다. 가슈타인 조약의 핵심이자 보-오 양국 분쟁의 씨가 되었던 땅 나눠먹기 부분에 관해, 훗날 비스마르크 본인은 ‘그게 다 나의 계획대로였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조약의 그런 내용은 오스트리아가 제안한 것이어서, 전부 비스마르크의 계산대로 였는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다.
참고 자료
염돈재,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 (서울: 평화문제연구소, 2011)
신인화, "냉전기 동서독관계와 현재 남북관계의 비교: 서독의 신동방정책을 중심으로", 『유럽연구』, 제26권 2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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