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캐널사건
- 최초 등록일
- 2012.12.10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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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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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발생
2.피해
3.대책
본문내용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있으며 에리 호와 온타리오 호를 연결하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두 수면 사이의 고도차가 85m에 달하여 그 낙차가 매우 크다. 1892년 윌리엄 T. 러브가 이곳에 약 7마일에 상당하는 운하를 건설하여 선박을 운항하고 발전소를 세우기 위해 주정부로 부터 승인을 얻어 추진하였다. 당시는 직류를 사용하던 시기로 장거리 송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곳에 발전소를 세우면 많은 공장을 유치할 수 있음은 물론 인구 20만∼100만의 도시가 건설될 것을 예상하였다.
그러나 운하가 1마일 정도 만들어져 갈 무렵 미국의 경제불황으로 재정적인 어려움를 겪게 되었고 교류전류가 발명되어 사업은 의미가 없어졌다. 결국 길이 1마일, 너비 10야드, 깊이 10∼40피트인 러브운하라고 부르는 웅덩이만 남기고 러브운하 사업은 1910년에 중단되었다.
이후 오랜기간 동안 러브운하는 그저 지역 아이들의 수영장,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되거나, 지역주민들의 쓰레기매립장이 되었다.
그 후 몇 십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1942년 후크 화학회사 (Hooker Chemical) 에서 이곳에 산업 폐기물을 버리는 것을 승인받아 금속 또는 섬유조각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 중 략 >
3. 대책
미국 연방환경처는 1978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 지역을 환경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거주하던 주민들을 이주시켰다. 이 지역은 주택과 학교를 모두 철거했고, 유해물질의 증발이나 침출을 방지하고 강우를 차단하기 위하여 플라스틱 커버를 씌운 위에
0.5m 가량의 흙을 쌓고 잔디를 심었다. 사람과 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울타리도 쳤다.
미국 정부는 유독성 화학물질로 오염된 이 지역을 정화하기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1차적으로 운하 매립지구의 흙을 뒤집어 엎어 빗물의 침투를 방지했으며, 매립지 주변에는 하수가 모이는 집수관을 설치했다. 다음으로는 운하구역과 나이아가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의 밑바닥에서 검출되는 다이옥신 제거작업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복구작업에 미국 정부는 1억 달러 이상을 지출했으나 한번 오염된 토양은 쉽게 정화되지 않았고, 별다른 소득 없이 지금까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유령도시로 남아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