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을 다녀오다
- 최초 등록일
- 2012.12.09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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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옥산서원 답사기
목차
없음
본문내용
서원이란 신라시대부터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사학교육과 고려시대부터 발생하여 세워진 사묘제도가 결합하여 성립된 사학교육기관이다. 서원은 묘와 원으로 이루어지며, 묘에서는 현인들을 제사하고 원에서는 학문을 연수하는 것이 서원의 주된 기능이다. 향교가 공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것과는 다르게 서원은 각 지방의 선현을 모신 것이 차이점이다. 초기 서원교육은 제향이라는 종교적 행위와 강학이라는 학문 영역을 일치시켜 두 기능을 모두 교육의 양면으로 추구했지만, 임란이후에는 제향과 강학의 기능이 분리되어 나타난다. 즉, 교육의 기능보다 향사의 기능이 중시되어간다. 그런데 서원에 배향하는 선현의 기준까지 모호해지면서 파당과 가문의 선전적 필요에 의해서 서원이 난립하는 풍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조선 후기 서원철폐령의 원인이 되고 전국에 47개소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서원이 사라지게 된다.
옥산서원은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고, 동방오현 중의 한 사람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계승하기 위해 세워졌다.
<중 략>
제향공간 내부는 체인묘와 전사청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체인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내부에 회재 이언적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체인은 ‘어질고 착한 마음을 실천에 옮긴다.’는 뜻이니 회재가 행한 실천철학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전사청은 체인묘의 측면 쪽을 고려하여 건물의 규모가 설정되었고 향교건축의 동, 서무의 역할을 하고 있고 동, 서무가 전사청으로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서원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건물인 사당과 강당, 루, 주출입구인 역락문이 같은 축선에 놓여 있으며, 역락문에서 체인묘까지는 크게 4개의 단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중심에 강학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낮은 단부터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이 1개의 축선에 따라 놓여있어 상, 중, 하의 위계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정신적으로 제일 높은 곳에 사당을 두어 성현에 대한 존엄과 외경심을 높이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성리학의 근본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경’의 공간이 위계적 질서체계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