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주거환경] 한국의세계문화유산
- 최초 등록일
- 2002.12.05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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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창덕궁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장경판전
종묘
고인돌
본문내용
'왕자의 난' 때문인지 태종은 경복궁에는 좋지 않은 일만 생긴다고 하여 정궁을 다시 짓자고 하였다. 그러나 신하의 반대로 이궁으로 창덕궁(昌德宮)을 지었다. 이때부터 조선은 경복궁은 정궁, 창덕궁은 이궁이라는 '두 개의 궁과 두 개의 궐'인 이궁양궐(二宮兩闕)'의 궁궐 형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임금은 정궁인 경복궁과 이궁인 장덕궁을 오가며 지냈다. 그 뒤 장덕궁의 규모는 점점 더 커졌지만 왕실 가족과 궁궐 내에 활동하는 인원도 함께 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이 모두 불에 타자, 광해군 2년 (1610년)에서야 서울의 궁을 복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경복궁은 터가 좋지 않아 창덕궁과 창경궁을 먼저 복구하여 정궁이 되었다. 그 후 창덕궁은 여러 차례 불이 일어나서 복구하며 계속 정궁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 제 26대 왕인 고종이 경복궁을 원래대로 지어서 창덕궁은 이궁으로 바뀌어 졌다. 그러나 일제시대에서 일본이 순종을 창덕궁으로 가게 하여 다시 정궁이 되었다. 후에 큰 불이 나서 창덕궁이 많이 탔는데 일본이 복구한다 하며 희정당은 강녕전을 헐어서 고치고, 대조전은 교태전을 헐어서 고치는 등 이상하게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인정전을 뺀 다른 건물은 1920년대에 지어진 근대식 건물이다. 현재는 정문인 돈화문과 금천교, 인정전, 어차고, 선정전, 대조전, 희정당, 비원, 주합루, 불로문 등만 볼 수 있고, 태극정과 취한정 그리고 취규정 등은 볼 수 없다. 인정전은 공사중이라 아쉽게도 사진을 못 찍었다. 창덕궁은 사적 55호이고, 1997년 12월 수원 화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