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과 솔론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2.12.03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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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상앙과 솔론의 비교
목차
1. 상앙
(1)개요
(2)법가사상
(3)변법개혁
2. 솔론
(1)개요
(2)솔론의 입법개혁
3. 상앙과 솔론의 비교
(1) 법에 의한 개혁
(2) 법가사상과 민주정
(3) 서로 다른 비극에 관하여
본문내용
1. 상앙
(1)개요
상앙은 기원전 390년경에 위나라 왕의 서공자(庶公子)들 중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앙(鞅), 성은 공손(公孫)이며 성과 함께 공손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훗날 진나라의 개혁과 부국강병을 성공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상(商)이라는 땅을 봉지로 받은 후부터는 사람들이 상앙 또는 상군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여덟 번째 제 육십팔편인 상군열전(商君列傳)에 그의 일생과 일화가 기록되고 있다. 일찍이 위나라 재상 공숙좌를 섬겨 중서자의 벼슬을 하였으나 공숙좌가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되자 서쪽 진나라로 가서 효공왕에게 등용된다. 상앙은 새 법령의 엄격한 적용으로 진나라의 부국강병을 꾀하였으며 그것은 나라와 백성들의 생활 전체를 철저하게 바꾸어 놓은 체제개혁이었다.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게 된 뒤 그는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그 동안 축적해 놓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쪽의 제후국들을 제압해 나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는 태어난 나라인 위나라를 상대로도 전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이기기 위한 사술을 사용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이로 인해 진나라는 단지 서쪽 변방의 오랑케라고 불릴 정도의 작은 나라에서 훗날 진시황에 이르러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할만큼의 대국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나 그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상앙은 그가 이룬 업적만큼이나 많은 적을 두게 된다. 그가 변법 개혁의 과정에서 시행한 귀족 계층의 특권과 특혜에 관한 폐지나, 일반 백성과 귀족 계층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적용한 군공과 상벌의 원칙 때문은 기득권 층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후에 그는 권력과 부를 내려놓고 시골로 물러나 권력과 떨어져 살지 않으면 진나라에 의해 제거될 것이라는 조량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가 그의 강력한 정치적 후원자였던 효공왕이 죽고 나자 그 뒤를 이은 혜문왕에 의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져 멸문지화에 이르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