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등록일 2002.12.05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9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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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임시구금실
◈ 고문실

1층
◈ 영상실
◈ 안내실
◈ 기획전시실
◈ 자료실

2층
◈ 강우규 의사 폭탄 투척
◈ 형무소 역사실
◈ 옥중생활실
◈ 담장망루
◈ 지하감옥과 유관순 열사

본문내용

◈ 지하감옥과 유관순 열사

일제는 민족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만을 투옥시키기 위해 1916년에 여사를 신축하였다. 이곳 지하에는 독방을 설치해 비중이 있는 애국지사들을 수용하여 가혹한 고문을 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그 뒤 1934년경에 옥사를 고쳐 지으면서 지하감옥을 매립하였으나, 학계와 독립운동 단체들의 건의로 1992년에 독립공원을 조성할 때 발굴,복원하였다. 복원된 지하감옥의 면적은 190㎡이며 사방1m도 안되는 독감방 4개가 있다. 특히 이곳은 유관순 열사가 일제의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신 곳으로 일명 '유관순 굴' 이라고 한다.
유관순 열사는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으로 이화학당에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으로 가서 4월 1일에 천안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그 뒤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 받고 공주감옥에 투옥되었다가 1919년 8월 1일에 서대문 감옥으로 이감되었으며, 경성 복심법원에서 법정 모독죄가 가중되어 7년형을 선고 받았다. 유관순 열사는 감옥 안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독립만세를 외쳤고 그때마다 일제가 잔혹한 고문을 하였으나, 조국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3·1운동 1주년인 1920년 3월 1일에 이신애 등 동료투옥자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시위를 벌였다. 그 뒤 일제는 유관순 열사를 지하독방으로 격리 투옥시켜 더욱더 잔혹한 고문을 하였고, 그 고문과 영양실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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