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와 대원군의 정치개혁, 개화파의 개혁
- 최초 등록일
- 2012.11.27
- 최종 저작일
- 2010.05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세도정치와 대원군의 정치개혁, 개화파의 개혁에 대해서 쓴 한국사 레포트입니다.
목차
차례
1. 세도정치란 무엇인가?
2. 세도정치의 전개
3. 세도 정치의 폐단
4. 흥선대원군의 개혁
5. 흥선대원군의 외교 정책
6. 개화파와 척사파
7.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
8. 개화파의 개혁
본문내용
1. 세도정치란 무엇인가?
국왕의 위임을 받아 정권을 잡은 특정인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조선의 정치형태로 원래 세도정치란 ‘정치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라는 사림의 통치이념에서 나온 이상적인 정치 도의를 의미하였으나, 척신 또는 총신이 강력한 권세를 잡고 전권을 휘두르는 부정적 정치형태인 홍국영 이후의 조선 후기 세도정치를 지칭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려나갈 수 있는 교화원리로서의 세도는 조광조 이래 정권을 담당한 사림이 실천해야 할 책무로서 자임한 정치형태였고, 이와 같은 정치자세의 정당성은 사림정치의 권위를 원칙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정조 초의 총신 홍국영이 정권을 담당한 이후 ‘世道政治’는 ‘勢道政治’로 타락, 변질되어 권세정치의 형태로 나타났다. 홍국영은 척신으로서 사도세자(이후 장헌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세손으로 있을 때 정후겸 등의 위협에서 그를 보호하여 무사히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도승지 겸 금위대장에 임명되어 정사가 그에 의해 상주되고 그를 통하여 하달되는 막강한 권한이 위임되었다. 그는 정치기반을 굳히기 위해 누이를 정조의 원빈으로 봉하게 하였으며, 궁중의 숙위소에 머물면서 인사를 비롯한 모든 정사를 독단하여 세도정치를 폈으나 4년 만에 추방되었다. 그는 국왕의 일개 비서실장 ·호위대장 격이었으나 그 실권이 재상이나 다름없다 하여 세도재상이라 불렸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정조의 유탁으로 김조순이 그의 딸을 왕비로 들여, 순조를 보필하게 되면서 안동김씨에 의한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중앙의 요직은 모두 이들 일족이 독점하였다. 그 뒤 조만영의 딸이 익종의 비가 되어 헌종을 낳자 헌종 때는 풍양조씨에 의한 세도정치가 15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철종의 비가 김조순의 일문인 김문근의 딸로 다시 안동김씨의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로 이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