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투쟁
- 최초 등록일
- 2002.12.03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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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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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각각의 파벌
Ⅱ.본론
1.무정의 숙청
2.국내파의 숙청
3.소련파의 숙청
4.연안파의 숙청과 8월 종파사건
Ⅲ.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서론
북한의 현대 정치사를 보면 전쟁이 끝난 후 각 파벌의 행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40년 중엽 북한지도부는 4개의 파벌, 즉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빨치산파로 뚜렸이 나뉘어져 있었지만 45년 이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접촉이 없었기에 서로 다른 파벌들은 그들의 존제또한 45∼46년에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해방직후 북한에는 어떠한 정파도 광범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중 1인독제체제의 실현을 위한 김일성은 조직적인 측면에서 열세에 놓여 있었지만 소련군정에 대한 친숙도, 단일 집단으로서의 조직구성, 또한 항일 무장투쟁이라는 후광 등으로 인하여 해방직후 북한사회에서 다른 어떤 정치집단보다도 하나의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급성장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과 기반을 이미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의 김일성의 각각의 파벌들을 숙청해 나아가는 모습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1.무정의 숙청
1950년 12월 4일 압록강 중류에 있는 별오리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회의 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회의 목적은 패전 요인을 찾아보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려는 모임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패전에 대한 책임문제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