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리더십

등록일 2002.12.02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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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카이사르는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으며, 역사가들에 의해 `고대 서양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기원전 100년 7월 법정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스로 무술을 익힌 그는 로도스섬으로 건너가 아나폴리우스에게 수사학을 배우고 돌아와서는 정치가의 길을 향해 정력을 쏟는다. BC 87년 집정관이었던 그의 이모부 마리우스가 죽고 킨나가 로마의 독재자로 군림하게 되었는데, 시저는 17세가 되던 해에 킨나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명문 귀족의 반열에 끼게 된다. 그러나 BC 82년 귀족당의 지도자였던 술라가 정권을 장악하자 정적 마리우스가 이끌던 평민당원을 무자비하게 박해하였다. 때문에 카이사르도 로마를 떠나 소아시아 등을 돌아다녔다.
BC 74년 로마로 돌아온 그는 군단호민관으로 선출되어 주로 종교와 사회문제를 다루었다. 이어 공공건물· 도로 등을 관장하는 조영관, 종교의 우두머리인 대신관을 거쳐 BC 61년 이베리아 총독이 되어 그때까지 로마에 복종하지 않던 나라들을 복속시켰다. BC 60년 다시 로마로 돌아온 그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동맹을 맺어 이른바 제1회 삼두정치를 폈다.
다음해 집정관으로 선출된 그는 6개 군단을 이끌고 9년간은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지역 정복에 전념하였다. 그는 채 10년이 못되는 기간 중 800개의 도시를 공략하고 300여 종족을 평정했다. 이렇게 큰 군사적 성공을 거둔 것은 오직 카이사르의 고유한 리더십에 감복한 부하들의 절대지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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