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공무도하가 연구의 허와 실

등록일 2002.12.02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300원

목차

1. 공무도하가의 명칭 문제
2. 공무도하가의 형성시기 문제
3. 공무도하가의 국적 문제
4. 공무도하가의 배경설화의 해석 문제

본문내용

3. 공무도하가의 국적 문제
공무도하가가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작품이냐, 중국 사람이 지은 작품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공무도하가를 중국 작품이라고 보는 사람은 최신호, 이상현이다. 그 근거로 작품의 배경인 '조선(진)'이 중국의 직례성 안에 있던 '조선현'이며, 3세기 진나라의 전통적 스타일로 만든 <상화가>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직례성 안에 있었다는 조선현은 노래가 형성된 훨씬 이후인 5세기 전반에 북위 태무제가 발해 연한의 북연을 정벌하면서 조선 유이민을 이주시켜 설치한 군현이므로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3세기 전반 진나라 무제 때 당시 채록자들의 전통적 스타일로 처음 만든 노래도 아니다. 그 전부터 <치주>, <문유만리객> 등의 악부시가 있었다. 김학성은 이 노래를 우리 작품으로 보고, 조선인 거류민에 의해 지어진 것이 중국인 손에 의해 채록되어 중국과 한국에 전파된 것이라고 했다. 또 조윤제, 이병기는 우리말 가사의 한역시라고, 임동권은 당시 유행했던 우리나라 민요라고 보았다. 이가원은 우리 노래로서 본래 한시였다, 고정옥은 후인의 의작이다, 라고 하여 역시 공무도하가를 우리 노래로 보았다. 사실 이 노래의 국적에 대한 논의는 정확한 답을 얻기도 힘들뿐더러, 그 논의 자체가 그렇게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공무도하가 불려졌을 당시는 지금처럼 국경의식이 강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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