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개론] 조선시대후기의 회화

등록일 2002.12.01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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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후기의 회화
조선 후기(약1700∼약1850)는 우리 나라의 회화사에서 가장 한국적이고도 민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풍이 형성된 시기이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비판적 태도를 취했던 실학(實學)이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문화 전반에 걸쳐 조선 후기를 지배한 시대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회화는 대체적으로 일반과 보다 가까워지고, 생활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를 택하여 한국적 회화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중기 이래 유행하였던 절파화풍이 쇠퇴하고, 그대신 문인화(文人畵) 또는 남종화(南宗畵)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다. 황공망, 오진, 예찬, 왕몽 등 원말의 4대가를 비롯하여 명대의 심주와 문징명 등 오파의 화가들, 청대의 정통파의 화풍이 전해지면서 조선 중기에 이미 수용되기 시작한 남종화가 선비화가들과 화원들에 의해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벽은(僻隱) 진재해(秦再奚)이후로 절파화풍은 미세한 부분적인 잔재만 남긴 채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는 남종화법에 기반을 두고 우리 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천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眞景山水)가 대두하였다. 정선파(鄭敾派)라고 부를 수 있는 이 화풍은 조선 초기의 안견파 화풍에 대응하는 매우 중요하고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풍속화(風俗畵)가 유행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풍속화의 대표자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이다. 넓은 의미에서 풍속화의 시작은 김홍도보다 이전에 이루어지고 있으나 김홍도와 그 후의 화가들에 이르러 어욱 뚜렷한 양상을 이루고 있다.
네 번째로는 청조의 회화와 그곳에 전래되어 있던 서양화풍이 전해져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에의 하여 부분적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양화풍은 일부 작품들에 나타나 있을 분 널리 유행되지 못하였지만 음영법과 투시도법을 특색으로하여 조선 말기 화원들에 의해 궁궐도, 초상화 민화에 폭넓게 채택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남종화, 진경산수, 풍속화의 유행이라 할 수 있다.

2. 조선시대 후기(약 1700-1850)는 우리 회화사에 있어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정선에의해 이룩된 진경산수화의 완성과 김홍도에 의한 풍속화의 발전 등 민족 의식의 발현에 의한 새로운 화풍의 형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화풍의 발현은 조선 후기의 사상적 발전을 배경으로 하는데, 조선 후기 특히 영조, 정조 연간에 부흥한 실학 사상(實學思想)의 발전은 문화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때에는 조선 중기에 유행하였던 절파 화풍이 쇠퇴하고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이러한 남종화의 유행은 중국에서 유입된 화보(畵譜)의 영향이 매우 큰데, 남종화가에 의해 꾸며진 《고씨역대명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나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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