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통일국가 수립운동

등록일 2002.12.01 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머리말
2. 독립운동과 통일운동
3. 반탁운동(反託運動)과 통일국가의 지향(志向)
4. 백범(白凡)의 남북협상(南北協商)
5. 맺음말

본문내용

통일국가 수립운동이라면 당연히 1945년 8·15해방 이후의 문제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전으로 올라가 살펴야 할 이유가 있다. 해방과 더불어 미·소의 패권주의에 의하여 한국은 남북이 분단되었는데 미국과 소련은 당시에 사상적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대표한 종주국이었고, 또 양국을 정점으로 냉전체제가 성립되어 있었으므로 한국의 남북분단이 사상적으로도 극단 대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8·15이후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발생하고 한국독립운동에서도 심각하게 관계되어 있던 문제였으므로, 통일국가 수립의 문제가 자연히 해방 전으로 올라가 살펴야 할 연원적 이유가 있게 된 것이다. 강대국에 의한 분단이라고 해도 만일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 의한 분단이거나 반대로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 의한 것이었다면, 8·15 이전의 사상 대립문제를 거론할 이유가 없을 것이지만, 국토의 분단이 사상의 분단으로 나타난 한국의 분단이었으므로 자연 국토분단 전의 사상 분단을 역사적 원류로 살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에서도 미주나 소련에서 전개한 경우는 어느 하나의 사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사상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범 김구가 활동한 중국에서는 중국 자신이 사상문제에 휘말려 있었기 때문에 그 곳 독립운동에서도 사상문제가 당면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거기에서 백범 김구가, 또 김구가 이끌고 있던 임시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하면서 8·15해방을 맞았던가? 그리고 해방 후 남북에서 점령군이던 미·소의 지원을 받으며 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미국과 소련에서 활동하던 이승만과 김일성이 친미 친소 정권을 각각 수립할 때, 미국과 소련과 연고가 없던 백범 김구는 어떠한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던가? 백범 김구는 한국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정권이 수립될 때, 거기에 순응하지 않고 독자적 행보를 고집했다. 그렇다면 패권주의 또는 제국주의의 시각에서는 분단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의 결과였다고 말할지 모른다. 여기에 한국민족주의의 시련이 있다고 하겠다. 아직도 제국주의 시각과 힘과 학문이 엄존하기 때문에 그 시련은 오늘날의 시련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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