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치론] 북한의 대외관계 연표
- 최초 등록일
- 2002.11.30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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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48년 정권수립∼1950년대 초 : 중 소 의존기
북한의 외교관계는 정권수립시기부터 1953년 휴전이 성립될 때 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진영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당시의 외교활동은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는 공산국가들과의 관계가 거의 전부였으며 수교국도 소련, 중국, 동구 사회주의 국가 등 12개국에 불과하였다. 특히 6·25전쟁을 거치면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은 소련·중국 중심의 외교를 강화하며 전후복구를 위한 군사적·경제적 지원획득에 치중하였다.
1945년
8. 8 : 소련, 대일참전하여 만주와 북한(경흥) 방면으로 진공개시.
8.10 : 소련군, 웅기 점령.
8.12 : 소련군, 나진, 청진 점령.
8.20 : 소련군(제25군) 사령관 치스챠코프대장, 「조선인민에게」첫 포고(북한 각지에서 반일운동가를 중심으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붉은군대(소련군)에 협력하라). 박헌영 등 「공산당 재건협의회」(재건파) 결성.
8.27 : 소련군사령부 명령으로 「평남건준」해체하고 「평남인민정치위원회」로 개편.
9.21 : 북한지역내에 소련 군표 사용, 소작료 3대 7제 채용 선포(註: 남한의 문헌에는 27일로 되어 있음).
9월중 일자미상 : 김일성일파, 소련군과 함께 입북. 뒤이어 「조선독립동맹(연안파)」 선발대 수명도 입북. 국내(북)파의 대표적 존재 현준혁, 반대파에 의해 암살.
10. 8 : 소련군사령관 주재로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각도 대표자회의 개최(75명 참가). 임시연락기구인 「인민위원회」조직하여 위원장에 조만식 선임했으나 본인 거부.
10.10 : 「조선공산당 서북 5도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비공개리에 개막. 동대회에 김일성이 정식으로 나타나 기조연설 「북조선민주기지 창설노선」제시(註: 이 노선은 6.25 때까지 공개하지 않고 실천만 하였으며 이 날을 조선노동당 창당일로 삼고 있다). 미군정장관 아놀드 성명, 「인공」을 정식으로 부인.
10.12 : 북한주둔 소련군 제25군사령관 치스챠코프 대장, 포고문 발표(註:『이제 모든 것이 당신들의 것이니 맡아서 산업부흥에 주력하라』고 재강조). 치스챠코프대장과 참모부장 뺀콥스키중장 공동서명의 성명서 발표(註: 일체 무기를 바칠 것, 정당단체는 등록할 것).
10.29 : 대소련 「영화수입계약」을 체결(註: 소련과 북한간의 최초의 무역계약이었으며, 영화분야라는 점에서 소련의 문화침투정책의 일면을 보여줌).
11.11 : 「조-소문화협회」결성.
12.10 : 「북조선항공협회」창설. 북한주둔 소련군 사령부, 「미곡자유·은행사업에 대한 명령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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