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공군의 공세와 용문산 전투의 결과
- 최초 등록일
- 2012.10.08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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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기서는 6.25 전쟁시, 중공군의 공세와 함께 우리 군의 큰 공세의 기회를 마련한 용문산 전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1. 중공군을 대파한 6사단의 용문산 전투
2. 중공군의 제5차 공세(4월 공세)
3. 중공군의 제6차 공세(5월 공세)
4. 양평 북방의 용문산 방어
5. 결사의 의지로 이루어 낸 쾌거
본문내용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올해는 6. 25 전쟁 62주년이 되는 해이다. 6 ? 25전쟁은 참상과 비난의 전쟁이 아닌 우리의 선배들이 국가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노력한 전쟁이었다. 결코 슬픔의 역사가 아닌 바로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위대한 역사였다.
1. 중공군을 대파한 6사단의 용문산 전투
일 시 : 1951. 5. 17. ~ 5. 28.
장 소 : 강원도 양평군 ~ 강원도 화천군 일대
교전부대 : 국군 제6사단 VS 중공군 제63군
특 징 : 구국 제6사단이 중공군은 상대로 용문산 지역의 지형을 이용한 효과적인 전면방어와 막강한 화력지원에 의해 대대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
<중 략>
중공군은 1951년 5월 17일 제19병단 예하 제63군의 제187, 188, 189사단을 투입하여 공격을 개시했다. 국군 제6사단 제2연대는 군단에서 지원된 5개 포병대대의 조명 및 화력지원을 받아 백병전까지 실시하면서 자정 무렵에 이를 격퇴했다. 중공군은 제6사단 전투전초진지를 주저항진지로 판단하고 제189사단을 투입하여 제2대대를 공격했다. 그리고 중공군의 3개 연대 규모가 제3대대를 공격했다. 2일 간의 혈투로 식량과 탄약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는 제2연대장는 제1대대로 하여금 역습을 감행하도록 하여 중공군의 공세를 약화시키면서 진지를 지켜내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