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사] Athenae와 Spart의 정치

등록일 2002.11.30 한글 (hwp) | 3페이지 | 무료

소개글

1학년 때 제출한 과제라 좀 미흡합니다..^^;

목차

1.Athenae의 정치
2.Spart의 정치
3.Athenae와 Spart의 정치 비교

본문내용

1.Athenae의 정치
아테네에서는 위기의 시대에 군대를 지휘하는 왕의 권한이 다른 관리인 軍指揮官(Polemarchos)에게 넘어가자 왕권이 크게 쇠퇴하게 되었고, 기원전 7세기 초에 왕권을 제한하는 귀족제도가 수립되었다. 王(Basileus)은 세습제(원시왕정;B.C.1400∼800)에서 선거제로 선출되다가 7세기 초에 그 통치기간마저 10년으로부터 1년으로 줄어들어, 왕정은 실제로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원전 638년경에는 執政官(Archon)을 비롯한 9명의 최고 행정관들이 행정, 사법, 군사 등의 주권을 장악하였다. 이 9명의 최고행정관에는 王(Archon Basileus-주로 종교적·의례적 기능을 담당), 軍指揮官(Polemarchos), 執政官(Archon-행정의 수반), 6명의 司法官(Themothetai)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자문협의회, 귀족회(Areopagus)와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민회(Ecclesia)가 있었다. 그러나 貴族會(areopagus)가 정치의 중심이 되면서 귀족과두제(貴族寡頭制 B.C.800∼594)가 발생하게 되었다. 귀족과두제(貴族寡頭制)는 토지재산이 소수 귀족들에게 집중 소유되어 초래된 결과이며, 또한 그러한 체제는 토지 소유를 더욱더 집중시켰다. 포도와 올리브 등의 재배가 시작되면서 농업경영의 집중화는 한층 촉진되었다. 가나하고 재력이 충분치 못한 농민들은 당장 빚에 몰리게 되었는데, 특히 당시에는 곡물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으로 수입되어 그 피해는 더욱 컸다. 소농들은 별 수 없이 토지를 저당 잡힐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가족과 그 자신마저도 저당 잡히게 되었다. 언젠가 빚을 갚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했지만 그것은 헛된 꿈에 불과했다. 결국 소농 계급의 상당수는 빚을 갚지 못하게 되어 농노로 전락해 버리고, 또 저당 잡힐 토지마저 없는 사람들은 노예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다.
정치에 대한 평민의 발언권이 커지자 7세기 말의 입법에 반영되어 최초의 성문법인 Dracon 입법(B.C.621)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법은 포악하여 악명이 높고, 농민의 상태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도시의 중산층은 정치적 민주화정책을 요구하게 되어, 마침내 기원전 6세기 초에 개혁이 실시되었다.

참고 자료

『그리스 국가』빅터 에렌버그, 1991, 민음사
『서양 문명의 역사Ⅰ』에드워드 맥널 번즈, 로버트 러너, 스텐디시 미첨, 1994, 소나무
『서양사의 이해』임희완, 전영사
『서양고대사』 Henry C. Boren, 1983, 탐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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