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기독교 시대의 예배
- 최초 등록일
- 2012.09.28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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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초기기독교시대의 예배에대한 글입니다
목차
1. 서론
2. 초기 기독교의 세계
3. 기독교인 되기
4. 기독교인의 삶과 죽음
1) 매일드리는 회중기도
2) 성만찬 성례전
3) 기독교인의 시간
4) 목회예식들
(1) 화해
(2) 치유
(3) 결혼
(4) 장례
5. 공동체 생활
1) 지도력
2) 설교
3) 교회음악
4) 교회건축
6.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본 글은 정경화 시대가 종결된 A.D.133년부터 교황 그레고리1세가 죽은 A.D.604년까지의 예배의 변모를 살펴보고자한다.
이 기간 동안 기독교는 지중해 전 세계와 라인 강과 다뉴브 강 서부까지 유럽을 확보하고 있는 로마 제국의 나머지 부분을 포함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넘어 아일랜드, 아르메니아, 페르시아까지 도달하였다. 이들 모든 국민들은 그들 고유의 문화적 특성에 기여하면서, 독특한 예배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2. 초기 기독교의 세계
이 기간 동안의 사회적 변화는 기독교는 비밀리에 모이는 소수의 경건한 무리들에서부터 로마 제국의 바실리카(basilicas)에 모여 예배하는 거대한 군중으로, 박해의 대상에서 로마 제국의 국교로 입장이 바뀌었다. 간단한 복음 메시지에서부터 고도로 복잡한 신학으로, 기독교는 고대 지성계를 지배하는 종교로 바뀌었다.
<중 략>
4) 교회건축
일반적으로 3세기 중반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이 개인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더 안전하였다.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가정교회는 유프라테스 지역 전방 수비 도시인 듀라유러포스(Dura Europos)에서 232년부터 25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방 두 개를 트고 한쪽 끝에 제단 탁자 용도인 작은 연단을 높게 하는 내부수리를 하였고 또 하나의 방은 세레를 주는 곳으로 만들어서 어린아이들이 옴 몸을 담그게 하거나 성인들이 물을 부어 씻을 수 있도록 하였다. 세례방은 주님의 빈 무덤에 간 여인들과 같은 성서적인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뚜렷한 예전 공간이 다양한 예배 행사를 위해서 배치되어 있으며 적절한 예전 센터가 각 방에 준비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평화로 말미암아 건물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게 된 후에 기독교 예배는 은밀히 모이는 비밀 모임에서 볼만한 공적인 행사로 바뀌어 갔고 다른 형태의 건축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치세 하에서, 두 가지 모델의 공공 건물이 사용되었다. 이방신전과 도시 대법정이다. 바실리카는 기독교 예배의 용도에 맞게 쉽사리 개조될 수 있었다. 감독은 모퉁이에 위치한 재판관석을 차지하게 되었고 장로들은 옆좌석에 앉았다. 대개 남녀의 성별을 구분하여 사람들이 설 수 있는 공개적인 회중들의 공간이 있었다. 족히 천년동안 에배의 자세가 확립되어 갔다.
참고 자료
James F. White, 「예배의 역사」, 정장복옮김, 서울: 쿰란출판사, 1997, 4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