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학 영상론] 문묘와 성균관의 건물들

등록일 2002.11.29 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들어가는글
2.성균관
3.국립대학으로서의 성균관의 역사
4.조선조 성균관의 교육제도
5.문화재 성균관과 유교종단 성균관
6.문묘의 주요건물들
7.마침

본문내용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서울 성균관이 최초로 세워진 것은 조선 태조 6년 (1397)이다.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건립된 성균관은 고려의 국도 開京의 성균관(원래 국자감이었던)을 답습한 것이다. 한편 고려의 성균관은 본디 國子監이 개칭된 것이며, 고려 국자감은 통일신라의 國學을 계승한 것이며, 통일신라의 국학은 삼국시대 교육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자연 조선 성균관의 연원은 삼국시대로 소급되지 않을 수 없다. 문헌상 우리 나라에 국가가 최고 교육기관을 건립한 기록은 고구려 小獸林王2년 (372년)에 太學을 세웠다는 것이다. 태학을 세웠다는 기록뿐이어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어려우나 이 고구려의 태학은, 중국의 경우 역사상 실질적 최초의 국립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漢 武帝 元朔 5년 (B.C 124) 大儒 董仲舒와 公孫弘의 건의에 의해 유교경전 <五經> 등을 교육하기 위해 수도에 세웠던 太學의 제도를 借用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후 시대적 차이는 있으나 백제, 신라에도 태학이나 국학으로 불리운 최고 교육기관이 설립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덕왕 16년 (717) 태감 수충이 당에서 공부자, 10철, 72제자의 영정을 가져와 국학에 봉안하였다. 경덕왕 6년 (727) 국학을 태학감으로 개칭하였다. 혜공왕 12년 (776) 태학감을 다시 국학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태조는 즉위 13년 (930) 서경에 학교를 창설하여 박사를 두고 별도로 학원을 건립 6부생을 가르치게 하였다. 성종 11년 (992) 개경의 국학을 국자감이라 하고 확대 개편하였다. 충렬왕 24년 (1298) 성균감이라 개칭하고 이어 충선왕 즉위년에는 이를 다시 성균관이라 하였다. 이 후 공민왕 5년 (1356) 국자감으로 환원하였다가 11년 (1362) 성균관으로 고쳐졌고 조선조 내내 다시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말에 이르러 서세동점의 충격에 의하여 성균관의 교육이 점점 더 유명무실 해졌고, 고종 24년 (1887) 성균관에 경학원을 설치하였다가 32년에는 경학원을 폐지 경학과를 두고 역사, 지리, 산술등 신학문도 교육내용에 포함되었다.
1910년 주권을 상실한 뒤 이듬해 일제는 성균관을 폐지, 경학원으로 개명하였는데
이는 대학기능을 완전히 상실케 한 것이다.

이 자료와 함께 구매한 자료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