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지역 양민학살

등록일 2002.11.29 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산청 금서 사건의 전모
※ 언론 보도자료 ※
-거창양민학살 사건의 전모
※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일지 ※

본문내용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1. 사건 개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1년 2월 하순(한국일보 1960년 4, 5월 기사) 혹은 3월 중순(부산일보 1960년 4월 기사),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로 군용트럭을 앞세운 버스 행렬이 들어왔다. 주민 증언에 따르면 버스는 최소 11대에서 14대였다고 한다. 버스 번호판은 '신흥' '경북' 그리고 '서울시영버스'였다는 증언이 있다. 이들 행렬은 외공 마을을 지나 중산리 쪽 반천마을로 올라갔다가 빨치산들의 총격을 받고 다시 철수, 외공마을 뒤 속칭 소정골 앞에서 버스에 타고 온 양민들을 하차시켜 골짜기로 끌고 갔다. 이때 이미 낌새를 차린 양민들이 저항하면서 '아저씨 좋은 곳으로 살러간다더니 이리 가면 우리 죽는 거지요'라면서 울부짖기도 했다. 이들 양민들이 골짜기로 끌려간 자리에는 이불, 옷가지, 솥단지, 갓난아기 베개등 가재도구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당시 현지주민들이 회수했다고도 한다. 소정골로 끌려간 양민들은 곧바로 학살을 당했다. 당시 유일한 현장목격자인 한 나무꾼 노인(사망)의 며느리 증언에 의하면 구덩이 앞에 한사람씩 세워놓고 총을 쏘았다고 한다. 이 부분 다른 지역 학살사건과는 차이를 보인다. 다른 지역 사건을 보면 무더기로 모아놓고 기총소사나 수류탄 투척 등을 자행하였는바, 가끔 생존자가 있었으나 외공의 경우 마치 처형하듯이 학살을 자행하여 생존자가 전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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