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과 수덕사의 문화재에 대한 조사 발표 자료입니다.
목차
1. 수덕사의 역사
2. 수덕사 내부 배치도
3. 수덕사 대웅전 개요
4. 수덕사 대웅전의 구조적 측면
5. 수덕사의 문화재
6. 참고문헌
본문내용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산4-1 덕숭산 남쪽 기슭
경내에는 대웅전, 승당인 청연당, 백련당과 선방인 조인정사가 있고 그 위로 소림초당, 향운각, 견성암, 전월사, 김선대 등의 암자와 누대가 있으며 삼층석탑, 여래탑, 다보탑, 부도 등이 배치되어 있음
수덕사의 대웅전은 현존하는 고려시대 목조건물 중 건립 연대가 뚜렷하게 밝혀진 건물이란 점에서 중요한 비중 차지
백제 고찰 - 현재까지 유일하게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백제 고찰 (백제고찰 : 흥륜사, 왕흥사, 미륵사 등 ) - 수덕사 경내에서 발견된 백제 와당(瓦當)이 백제시대의 창건을 뒷받침하고 있음
백제의 고찰 수덕사
덕산향토지(德山鄕土誌)
백제 침류왕 2년(358년) 수덕각시라는 관음화신(觀音化身)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짐.
수덕도령이 건너마을의 덕숭낭자를 사모하여 끈질기게 청혼한 끝에 덕숭낭자의 집 근처에 절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 받는다. 그러나 절이 완성되는 순간 낭자에 대한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해 불이 일어 절이 소실되어 버린다. 마지막 세 번째로 절을 지을 때에서야 비로서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지어 절이 완성되고 수덕도령은 덕숭낭자와 혼인을 한다.
<중 략>
석가모니불 - 당당한 어깨와 넓은 무릎, 안정된 자세-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한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음- 귀는 길고, 목은 가늘며 세 개의 주름인 삼도가 뚜렷함 - 통견 : 양어깨를 옷으로 다 덮는 형식- 오른팔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17세기 불상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줌-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모습
약사불과 아미타불 : 머리 모양, 얼굴 형태와 귀ㆍ눈ㆍ입ㆍ코의 표현, 양손과 옷주름선의 사실적 묘사 등이 본존불과 동일
-약사불이 왼손을 위로 하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 바닥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비해, 아미타불은 손의 좌우가 바뀌고 약그릇이 보이지 않는 것만이 다름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여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연(守衍)비구를 비롯한 7명의 화원(畵員)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음
참고 자료
修德寺 大雄殿의 壁畵, 1960, 美術資料 제2호, 국립박물관
강봉진, 1971, 禮山 修德寺 大雄殿 實測 報告, 15권 39호, 대한건축학회지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국보 제 49호), 1979, 한국의 고건축 제4호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95,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제9집, 예산군편
고영섭 외3, 수덕사, 2000, 빛깔있는 책들, 대원사
修德寺 重修記 , 2002, 한국사연구휘보 제121호, 大韓佛敎曹溪宗 第7敎區本寺 修德寺
수덕사 대웅전 실측조사보고서, 2005, 한국사연구휘보 제132호, 문화재청
김명숙, 2006, 백제의 온화한 향취가 있는 수덕사, 아름다운 우리문화 4 한국의 사찰 수덕사, 미술세계 4월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