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제갈량전

등록일 2002.11.27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제가 공들여 준비한 제갈량전 입니다..
위오촉의 지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후한말과 삼국의 정세
Ⅲ. 제갈량의 출생과 성장기
Ⅳ. 유비와 공명의 만남(삼고초려)
Ⅴ. 공명의 정치이념
Ⅵ. 공명의 "출사표"
Ⅶ. 공명에 대한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제갈량은 자가 공명이고 낭아군 양도현(산동성 기수현) 사람이며, 한의 사예교위 제갈풍의 후예이다. 부친 제갈규는 자가 군공이며, 한대 말기에 태산군의 승을 지냈다. 그리고 장씨를 어머니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형 근은 7세가 되어서야 동생 양을 보았는데 제갈량의 신장은 8척이며 얼굴이 길고 말상이었다고 한다. 장씨는 그 뒤에 아들 균을 두었으며 이밖에 딸이 하나 더 있다. 어려서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된 양은 난이 일어나자 한 때 형주로 피난을 간 적도 있었으나 숙부인 제갈현씨을 따라 남양 융중으로 간 것이 14세때의 일이다. 오래지 않아 숙부마저 세상을 떠나고 그는 아우 균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소년 시절의 제걀량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제갈량은 17세부터 약 10연간은 배양에서 보냈다. 그는 청경우독을 하였고 때로는 마을 서쪽에 있는 약산에 올라 고향인 산동지방에서 많이 불리우는 양부(양보)라는 시를 즐겨 읆기도 하였다. 그의 집 앞에 와룡강이 흐르는데 그 강에 자주 나가 노닐므로 별호를 와룡선생이라 부르게 되었다. 항상 자신을 관중, 악의에 비유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가 없었다. 오직 박릉군의 최주평, 영천군의 서서만이 제갈양과 친교를 맺었으며, 확실히 이와 같다고 말했다. 양은 특별하고 소중한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배양땅에 황씨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면남의 명사로서 명문 집안 출신인 채풍의 딸을 아내로 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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