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의 몰락
- 최초 등록일
- 2012.08.03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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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봉건제가 몰락한 이유에 대하여
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봉토와 민족 국가는 연속적인 관계를 갖기도 하고 비연속적인 관계를 갖기도 하기 때문에, 봉건제가 소멸되었다는 것이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사실 봉건제의 종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왕이 승리하는 경우라도 그 대립으로 인해 반드시 귀족 세력의 봉건적 기반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봉건제가 폐지되었다고 알려진 지역에서도 의식적으로 봉건제를 폐지하려는 운동은 드물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후기에 이루어졌다. 또한 그 운동은 봉건제의 핵심보다는 봉건잔재를 제거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초기에 사람들은 봉건제를 정치적 관계의 일반적 범주로써 인식하지 못하였다. 중간계급의 성장과 증대하는 부 그리고 그 부의 유동성이 봉건제를 약화시키는 도구들이었으나 그렇다고 봉건제를 몰락시킨 요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봉건제를 하나의 제도로서 인식하기 훨씬 전에 봉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유럽의 경우는 특수하다. 봉건제 붕괴가 시작되는 시기는 약 14세기에서 17세기 경이며, 서유럽에서는 그 시작이 빨랐고, 동유럽에서는 늦었다.
<중 략>
농민의 지위 상승
14세기 사회는 스스로 자초한 그러한 모든 난관들과 함께 서양의 역사상 가장 혹심했던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인 흑사병을 겪어야 했다. 이야말로 중세 세계의 위기를 야기한 궁극적인 요인이었다. 1348-50년 사이에 전 유럽을 휩쓸고 그 이후에도 빈번하게 발생한 흑사병은 파멸적인 인구 격감과 노동력 부족을 야기했다. 대부분의 장원에서는 토지가 남아돌고, 경작자를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지배계급은 수입 보존과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노동자의 이동과 임금을 강력히 억제하려고 했다. 농민들은 더 좋은 보유 조건을 찾아 다른 촌락이나 또는 도시지역으로 빈번히 이동하였다. 두 계급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과 적대감이 심화되면서 그것은 바로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비화하였다. 이런 현상의 가장 극적인 표출형태가 14세기 후반과 15세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농촌지역의 반란이었다.
14-15세기의 전환기에 이르자 장원제 자체가 붕괴에 직면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러쉬튼 쿨본, 김동순 옮김, 봉건제의 이해, 민음사, 1991.
브라이언 타이어니, 이연규 역, 서양중세사, 집문당, 1991.
마르크 블로크, 한정숙 역, 봉건사회2, 한길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