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근세사] 명·청대의 신사에 관한 고찰

등록일 2002.11.27 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명청시대의 신사에 관한 자료입니다. 당시 사회에 대하여 순기능과 역기능, 공의식의 발로(發露)와 사리추구, 즉 공·사의 양면성(兩面性)을 구유(具有)한 존재였던 신사에 관해서 명과 청의 두시기로 나누어서 그 역할에 대해서 자세히 조명해 보았습니다. 또한 서론에서는 신사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해 놓음으로써 신사층에 대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님들에게 도움이 되길...

목차

Ⅰ. 서 론
Ⅱ. 신사층의 형성
Ⅲ. 명대의 신사
Ⅳ. 청대의 신사
Ⅴ. 결 론
※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신사(신사)는 국가의 제도적 장치를 매개(매개)로 하여 역사에 등장해서 명초(명초)부터 사회에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나, 사회적 계층으로 형성된 것은 15세기 중엽부터였다. 신사층을 분석해보면, 신층(신층; 관직경력자)은 물론 전대(전대)이래의 사회의 지배층으로서 그들 사이에는 강한 동류의식(동류의식)이 존재하였고, 한편 사층(사층; 미입사 학위소지자)은 현실적으로는 신층과도, 평민과도 구분되는 '증간층'이었다. 국가권력이나 평민은 이들을 '신사(신사)'로 일괄하여 칭하였다. 또 민(민)을 넓은 의미로 구분할 때는 사대부(=신사)와 제민(제민)으로 구분하였다. 명·청시대에 걸쳐서 중국은 사회·경제적으로 규모가 방대하고 다양해졌다. 그러나 관인(관인)의 수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방행정이나 향촌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조수단이 필요하였다. 명·청 양조(양조)는 그러한 보조수단으로 신사층을 선택하였다. 한편, 평민의 입장에서도 국가권력의 지방통치에서 생기는 공백부분을 신사의 사회적 지배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명 중기로부터 청말까지의 중국의 사회질서는 거시적으로 보면, 국가권력층과 평민의 공통의 기대 하에 신사가 사대부적인 공의식(공의식)에 의해서 국가권력의 보좌역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신사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적(사적)으로는 개인의 사리를 추구하는 행동이 있었지만

참고 자료

※ 참 고 문 헌

閔斗基, {中國近代史硏究}, 一潮閣, 1973.
吳金成, {講座 中國史 Ⅳ}, [明·淸時代의 國家權力과 紳士],
지식산업사, 1989.
吳金成, {中國近代社會經濟史硏究}, 一潮閣, 1986.
李春植, {中國史 序說}, 敎保文庫, 1991.
中國史硏究室, {中國歷史 下}, 신서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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