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창건자 주세붕

등록일 2002.11.27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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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495년(연산군1)에서 1554년(명종9)의 사람으로 자(字)는 경유(景游), 호(號)는 신재(愼齋), 남고(南皐), 무릉도인(武陵道人)이고, 본관(本貫)은 상주(尙州)이다. 용양위 부사과(副司果)로서 이조참판에 증직된 문보의 아들로 태어났다.
6세에 소학(小學)에 능통했고 10세에 사서(四書)를 모두 읽었고 말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총명하였다. 1522년(중종17)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이해 겨울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었고, 1524년에 정자(正字)가 되었다가 사가(賜暇)를 받아 호당(湖堂, 일명 讀書堂)에 들어 공부하고 예문관 검열(檢閱)에 피선 되었으며 홍문관 정자에 옮겨져 수성잠(守成箴)을 지어 올렸고 이내 저작으로 옮겨졌다. 1527년에 박사(博士)로서 부수찬(副修撰)에 올랐다. 겨울에 큰 우뢰 소리가 있음에 옛 일을 상고하라는 명령을 받고 시전(詩傳)의 시월편을 써 올렸는데 그 때에 김 안로(金安老)가 모사(謀事)하며 배척하여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에 좌천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 544번지 [구마고속도로로 칠서I·C 에서 칠북방면으로 약200m지점]에 위치한 무산사는 조선시대 유학자 주세붕(1495~1544) 선생의 영정과 유품을 모신 곳이다. 숙종 24년(1698)에 유림과 후손이 세웠다.
고종(1863~1907)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유림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탔다. 현재의 무산서당은 그 후에 세운 것이다. 무산사 내에 있는 무산서당은 앞면 5칸 · 옆면 2칸의 1층 건물이다.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 2칸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 옆에 각각 2칸과 1칸의 방을 꾸며 전형적인 서당의 공간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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